방학리 사는 초등학교 동창 김종명이네 집에 놀러 갔/다가 안방에서 나오는 머리 하얀 노친네를 보고 그의 어/머닌 줄 알고 깜빡 큰 절을 올릴 뻔했다고 한 오탁번의 시/는 일품이었다. 아니, 거실에서 자정 너머까지 티브이를/보다 안방에 들어 가보니 이런! 뜻밖에도 몇해 전에 돌아/가신 장모님이 침대위에서 안경을 끼고 책을 읽고 계시/더라는 그의 시는 더욱 일품이었다, 아니, 병원에서 어느/정도 생사 고비를 넘기고 나서 예쁜 간호사가 링거 주/사 놔준다고 팔뚝을 만지자 자기도 몰래 그것이 불뚝 솟/더라는, 그래서 다시 남자가 된 듯 면도를 깨끗이 하고/환자 복 바지 하나 새로 달라는 말을 그만 " 바다 하나 주/세요" 했다는 그의 시는 더더욱 일품이었다. -이시영 `오탁번의 시`　오탁번 시인의 시는 솔직하고 담백하다. 시는 독자에게 재미를 줘야 한다. 　이시영 시인은 솔직하고 재밌는 이런 오탁번의 시를 일품! 이라고 생각하고 시인을 소재로 시를 썼다. 오탁번 시인의 시는, 우리 토박이 삶의 너그러운 풍정을 정겨운 토박이말로 감칠맛 나게 보여준다. 우리동네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가족들 얘기, 아내와 친구들 얘기, 性이야기들. 거침없이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무엇보다도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우리는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이런 실수 한 얘기가 시의 좋은 소재가 된다. 　세월이 쌓이면서 `나이든 자기 마누라를 보고 장모님으로 착각`을 한다든지, `초등학교 친구 마누라를 보고 친구의 어머니로 잘 못 알고 `실수`를 할 뻔 했다"는 솔직한 실수의 이야기들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런데 시의 후반부 `예쁜 간호사에게 실수한 얘기`에서 이 시는 재미를 더한다. 즉 `환자복 바지` 하나 주세요 라고 해야 할 말을, "바다! 하나 주세요" 라고 엉뚱한 실수를 한다. 이 부분이 이 시의 백미다. 이러한 시인의 `無心의 길`, `無의 길`이 얼핏 현자의 안목을 보여준다고 할까. 　즉 시인의 높은 형이상학적인 정신적 안목이 드러난다. 오탁번 시인의 시는 이제 나이, 늙음, 죽음, 존재등의 문제 까지도 시인의 깊은 관심은 닿아 있다. 시인이 추구하는 `一心의 길`에 생의 영광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