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막 지고 있는 이팝나무 아래를 걸으면서 쑥버무리의 떡가루 무침을 생각했다. 떡 한 접시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조부모에게 들었을 뿐, 보릿고개의 가난을 모르고 자란 그도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네거리 건너 대형마트가 보였다. 작년에 사주지 못한 아들의 로봇 장난감과 홀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적어도 백화점보다는 싼값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는 먼저 하나님께 가버린 아내를 떠올렸다. 　매장에 와서 보니 작년보다 로봇값이 껑충 뛰었다. 물가가 오른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그는 로봇을 얼른 집어 들지 못했다. 키 큰 그가 허리를 굽혀 즐비하게 늘어선 로봇에 코를 박고 가격표를 비교하고 있을 때, 차림새가 말쑥한 한 남자와 그의 아내인 듯한 여자가 실례합니다, 하고 그가 비켜주길 기다렸다. 그들은 그중에서 가장 비싼, 커다란 로봇을 꺼내서 들고 갔다. 그의 마음에 번민이 일어났다. 그는 무리해서라도 아들의 허리께쯤 오는 큰 로봇을 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그 후 감당할 생활비며 교육적으로 부정적인 가치관이 그를 머뭇거리게 했다. 순간 그의 입속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과부의 울음, 고아의 애원모든 곳에서 당신은 보네 더 큰 불행을나랑 함께 가, 그대여, 그래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 괜찮아괜찮아, 나는 괜찮다고 말했어모든 것이 괜찮다고　 ―밥 딜런의 `괜찮아 It`s All Good`부분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밥 딜런은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었어` 　대중예술을 혐오해왔던 그는 밥 딜런을 조명한 책,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오민석. 살림 지식 총서`를 읽고 난 후 그 책을 끼고 다니며 읽고 또 읽었다. 뒤표지에 적힌 대로 과연 국내 초유의 저서였다. 밥 딜런이 더 큰 불행을 보라며 괜찮다고 자신을 위로하는 듯했다. 　대중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는 논란이 많았지만 문학과 철학과 사상이 한데 어우러진 밥 딜런의 음악은 장르를 뛰어넘은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밥 딜런 역시 이 글의 주인공처럼 클리셰(cliche)를 혐오한다. 저자 오민석은 `우리가 딜레당트(dilettante)를 혐오하는 것은 그들이 진부한 형식에 예술의 이름을 붙이기 때문이며 취미 생활을 직업이라 부르기 때문이다`며 밥 딜런을 옹호했다. 밥 딜런이 카스펠 음반을 연이어 내자 대중은 예수쟁이라고 비난했다. 그 사실에 대해 오민석은 이렇게 항변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약한 존재`로 인식할 때에만 신에 대해 사유한다. 오만한 인간은 절대 신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다. 딜런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결핍의 존재임을 알고 있으며 그리하여 `저 너머`의 존재에 대하여 사유한다.　어떤 사람은 마치 왕처럼 살았지.다른 사람은 길거리에서 구걸을 했어. (…) 어떤 사람은 날카로운 칼에 찔려 죽었지어떤 사람은 총탄에 맞아 죽었어어떤 사람은 애간장을 끓고 죽었지자기 아들이 사형당하는 것을 보았던 거야. 　 -`오래전에 먼 곳에서 Long Ago, Far Away`부분　　밥 딜런의 사유는 길 잃은 양을 찾으려는 예수의 사랑을 흠모하고 있다. 　로봇 장난감 앞에서 상념에 젖어있던 그는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느낀 듯 중얼거렸다. 어떤 아이는 고아이며, 어떤 아이는 굶고 있는데… 괜찮아, 괜찮아. 　그는 그중 가장 값싼 로봇을 집어 들고는 계산대로 가며 흥얼거렸다. 모든 곳에서 당신은 보네, 더 큰 불행을 나랑 함께 가, 그대여, 그래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