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집 뒤뜰에 두릅나무 몇 그루를 심었는데, 해마다 봄이면 탐스러운 두릅 싹이 돋아나 봄 향기를 전해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지마다 새싹이 부풀어, 봄의 식단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약간은 더 기다림이 필요한 듯 하였지만, 나는 활짝 핀 두릅보다 튜울립 송이처럼 봉긋이 머리를 내민 두릅 싹의 풋풋한 맛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곧 도난당할 것 같은 예감도 있어, 모두 채취하려 하였으나, 더 키워야 한다는 마눌님의 제지로 손을 대지 못했다. 아마도 울 마눌님은 아침마다 부쩍 부쩍 자라있는 두릅나무 새싹의 탐스러움을 보는 즐거움도 컸던 것 같은데, 오늘 아침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길래 나가보니, 그간 애지중지하던 두릅나무의 새싹들은 온데간데없고, 앙상한 나무들만 거기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거의 울상이 된 마눌님은 아침 내내 잃어버린 두릅나물을 아쉬워하며 누군지도 모르는 두릅 도둑을 저주하더니, 드디어 나에게 수사(搜査)를 요청한다. 누구의 소행이든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니 미련을 버리자고 해도 막무가내라,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주변을 비추고 있는 방범카메라의 기록을 검색하여 범죄(?)현장을 찾기는 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사라진 두릅나물이 돌아올 리도 없고, 그깟것 때문에 이웃과 얼굴을 붉힐 수도 없으니, 그냥 맛있게 드십시요, 할 수밖에. 그래서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은 근심이 크고,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은 늘 불안하다. 차라리 잃어버리고 나니, 그간 행여 누군가의 손을 탈까봐 전전긍긍하던 근심이 한꺼번에 사라졌으니 반드시 손해 본 것만은 아니련만, 울 마눌님의 미련과 저주는 쉬 끝날 줄을 모른다. "저 얌체같은 인간을 그냥!" 아파트와 전원생활의 차이점이라면, 손바닥만한 텃밭이라도 내손으로 키운 채소를 먹어 볼 수 있는 행복이 있고, 또 이웃과의 정다운 관계도 큰 장점이다. 그런데 그 자그마한 마당 한켠의 농사조차도 작물을 도난당할까봐 전전긍긍해야 한다면, 거대한 부를 소유하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은 오죽 그 삶이 팍팍할까? 그나마 CCTV 덕분에 행위자를 특정할 수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울 마눌님의 피의자(被疑者)가 되었을 터이니, 그래서 속담에 훔친 자보다 잃은 자의 죄가 크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평소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 더욱 잃을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릅 도둑을 당하고 보니 가을만 되면 우리 집에 몰려드는 귀여운 도둑들이 또 생각난다. 마당 한 귀퉁이에 서있는 감나무에 탐스런 홍시들이 익어갈 무렵이면, 뒷산에 사는 새들이 얼마나 집요한지, 나는 거의 잘 익고 성한 감은 아예 맛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리고 새들뿐만 아니라, 뒷산에 많이 서식하는 고라니들도 호시탐탐 우리 농장을 노리는 도둑들인데, 첨엔 이 좀도둑들을 지키려 해봤지만 쉽지 않았고, 나중엔 그 알량한 것도 나누지 못하는 자신이 미물인 짐승들보다 낳을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패배를 합리화 시키며 결국 방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먹이가 귀한 철에는 더러 집 뒤에 새와 초식성 짐승들의 먹이를 뿌려 두었더니, 그들은 이제 도둑이 아닌 손님이 되어 뒤뜰을 북적인다. 그래서 얘기지만, 천만금을 소유해도 나눔이 없는 자 가난한 자이며, 아무것도 없어도 나누는 자가 곧 부자라는 자위도 해본다. 우리집 두릅을 훔쳐간 자, 내게서도 훔쳐갈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였으니, 고맙다고 해야하나? 나는 종일 화가 나 있는 마눌님을 위로하기 위해, 채소가 무한 리필되는 식당으로 외식을 나갔는데, 울 마눌님은 평소보다 엄청난 양의 채소를 담아와 토끼처럼 먹어대기 시작한다. 마치 잃어버린 것을 벌충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거지가 아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큰 집에 화재가 나서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며 아들에게 말한다. "야 이놈아! 너는 애비를 잘 만난 덕분에 저런 화를 당할 걱정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