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가본 사람들은 법대 위의 재판관이 얼마나 높게 보이는지 느꼈을 것이다. 특히 형사재판의 경우 선고일 때 재판관의 판결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다시 포승줄에 묶여 호송차를 타고 교도소로 되돌아갈지, 아니면 자유의 몸이 될지는 오롯이 재판관의 판결에 달렸다. 영어의 몸이 되어 장기간 교도소나 구치소에 갇힌 피고인에겐 자신의 혐의를 벗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게 더 급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 집행유예라도 받아 풀려나가기만 해도 피고인 가족들은 다행스럽게 여긴다. 재판 결과 법정구속 되거나 예상치 못한 징역형을 받을 경우 본인 뿐만 아니라 법정에 나와있던 가족들도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때부터 온 가족이 재판에 매달리게 된다. 이리저리 수소문해 변호사를 구하고 접견을 하러 다니다 보면 생업은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돈은 돈 대로 들고 몸은 몸대로 지치는 게 재판인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하늘처럼 높게 보이던 재판관들이 잇따라 구속되어 재판정에 출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같은 판사라도 훨씬 고위직이라고 생각되는 전직 법원행정처 차장은 물론이고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초유의 현실은 도저히 믿기 어려울 따름이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 할 위치에 있는 법원 고위직 인사들의 구속은 그래서 그만큼 일반인들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다. 평생을 법대 위에서 남을 심판할 줄만 알았던 고위법관 출신들이 포승줄에 묶여 호송차에 내리는 모습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명석한 판사들이 갈 수 있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분들이기에 더 더욱 안타깝다. 그러나 전직 법관에서 피고인으로 신분이 뒤바뀐 그들이 그간 자신들이 재판하던 수많은 사건의 피고인과 가족들이 법대 아래에서 판결을 기다리며 애타던 심정을 늦게나마 조금이라도 이해 하지는 않았을까. 얼마 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재판에 출석해 자신을 석방해달라고 울먹이며 재판부에 호소하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임 전 차장은 지난해 10월 27일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구속됐었다.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는 임 전 차장은 재판부에 "석방된다면 오해받는 행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근신하고 또 근신하겠다"고 하면서 "판사로서 남편을 바라보던 집 사람이 매일 같이 법정에 출석해 피고인이 된 저를 지켜보고 있는 데도 불평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울먹였다고 한다. 방청석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임 전 차장의 부인도 고개를 숙인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죄는 미워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법대에서 내려와 재판을 받고 있는 임 전 차장의 모습은 일반 형사사건 피고인이 재판을 받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다만 그가 전직 법관이었다는 것을 뺀다면. 법정에 나와 재판을 지켜보고 있는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 또한 여느 일반 형사사건 가족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가족들은 6개월 넘게 형을 살았으니 이제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 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사법 농단과 관련 10여 명의 전직 법관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전례 없는 일이다. 법정에서 선 이들이 어떤 처벌을 받든 이런 안타까운 일이 더 이상 사법부내에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법관들은 재판과 관련 오해와 불신을 받는 일이 없게 오직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