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사용하는 식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려 있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만일 그 칼이 강도의 손에 들려 있으면 사람을 해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 역시 좋은 위정자를 만나면 이상적인 체제로 나아갈 수 있지만, 나쁜 위정자를 만나면 민이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해 임시정부 수립 백 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 민주주의 백 년의 역사를 한 번 되돌아보기로 한다. 구한말(舊韓末)의 세계는 새로운 과학문명이 태동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신무기로 무장한 열강들이 식민지 확장을 경쟁하던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그러나 오 백년 당쟁으로 얼룩진 이씨조선은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신(新)문명을 거부하며 수구(守舊)에만 골몰하다가, 일찍이 선조들이 야만인으로 치부했던 이웃 섬나라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는 국치를 당하게 된다. 당시 중국 상해로 피신한 일단의 개화파 지식인들이 군주 정치의 폐해를 되새기며, 서양의 민주주의 사상을 차용하여 소위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제창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상해 임시정부의 사상적 모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로 법통이 이어지면서 현재 우리 헌법의 기초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상해 임시정부 `조소앙(趙素昻)` 선생의 삼균주의는 정치, 경제, 교육의 기회균등 즉,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정치민주화, 경제민주화, 교육의 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왕정시대의 계급사회를 타파하고, 인류평등 사상에 기반한 민주사회와 공화정(共和政)을 이념으로 한 합리적 이론체계였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에서 한반도를 지배하던 일본이 미국에 패전하여 물러가자, 한반도 남쪽에는 우리나라를 해방시킨 친미세력이 들어오고, 북쪽에는 소련을 후견인으로 한 공산세력이 들어와 이념 대립을 함으로써, 일제 침탈기간 동안 그나만 우리 민족의 얼을 지키려 했던 상해 임정 인사(人士)들은 남북 어느 편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역사의 유민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36년 만에 한반도가 해방 되었다고 하지만,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를 일본 영토의 일부로 보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군이 한반도의 해방군이라기보다는 점령군으로 들어왔다는 표현이 정확할 수 있고, 실제로 미국이 신탁통치를 하며 친일파들을 그대로 기용하여 그들에게 반공투사로 신분세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보여 진다. 일본 식민지배 하의 한반도 보수 기득권 기회주의자들은 일제 통치기간 동안 반민족 행위로 일본에 충성하여 기득권을 누리고, 또 해방 후에는 미국에 충성하며 독립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로 탄압하여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시겨 오면서 역사 왜곡은 물론 우리 민족정기를 아예 말살하려한 간악한 자들이다. 그러니까 오늘날까지도 상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는 벌을 주고,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상을 받는 정의와 가치가 전도된 이 이상한 사회의 뿌리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리고 어떤 사회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 역사를 바로잡고, 또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할 것이다. 우리 선조 `조소앙`이 주창한 삼균주의야말로 인간의 이성에 따른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이념이기에, 과거 독재자들에 의해 유린되고 도난당한 민주주의는 반드시 되돌려져야 하고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사명이며, 후손들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반인륜 반민족 범죄에 시효는 없다고 한 프랑스인들의 말을 우리도 한 번쯤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누가 나에게 왜 사느냐고 물으면, 항상 `미래가 궁금해서`라고 답할 정도로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그러나 나는 과거를 덮자고 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과거가 더욱 궁금해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