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세월에 따라 주거문화가 변하고 있다. 단독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온 후 텃밭도 화단도 없어져 버렸다. 베란다에 좋아하는 화분 몇 개로 장식하다 그 수가 점차 늘자 정원 모양으로 정원이 되어간다. 한옥에 살 때는 마당에 조그마한 채전도 가꾸고 좁은 평수지만 담벼락에 따라 채송화, 분꽃, 봉선화, 맨드라미, 나팔꽃으로 가옥의 운치에 맞게 꾸며왔다. 대문을 중심으로 양 쪽에 남새밭을 장만하고 상추, 고추, 배추, 가지 등 철따라 온 식구가 먹을 채소를 길렀다. 베란다에는 무슨 꽃을 심을까 궁리 중에 식구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화초를 심기로 했다. 취미가 달라서 그런지 화수도 가지가지다. 꽃의 매력은 한 마디로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고요와 침묵이다. 꽃도 인간이나 동물 못지않게 표정을 가졌다고 한다. 어떤 꽃은 웃는 것 같고 어떤 것은 슬픔에 잠겨 있다. 어떤 꽃은 애련하여 생각에 파 묻혀서 자신 없어 보인다. 또 다른 것들은 정직하게 곧으며 그저 수수하게 순수함을 나타내 보인다. 얼굴 둥글고 넓적한 해바라기와 접시꽃이나 도라지꽃처럼 그리고 박꽃도 그렇다. 문하인 주베르는 "튤립은 영혼이 없는 꽃 같고 장미와 백합은 영혼을 갖고 있는 것처럼 넘넘하다." 어떤 이는 국화꽃을 은둔자, 모란은 풍요와 부귀를 나타내고 연꽃을 군자라 한다. 그 밖에 꽃말에 붙여진 사연도 많다. 개나리-잃어버린 사랑, 붉은 국화-당신을 사랑하오, 나팔꽃-애정, 다알리아-감사, 히아신스-내 가슴에 슬픔만 남았어요, 코스모스-사랑, 장미-열렬한 사랑, 아카시아-남 몰래 바치는 사랑, 스위트-아름다운 추억, 들국화-기다려 주세요, 아네모네-당신의 사랑을 믿는다, 민들레-내 사랑 그대에게. 꽃은 보기에 아름다운 것처럼 많은 사랑과 추억 그리고 슬픔과 진실, 이별과 실연을 안고 있다. 피는 꽃의 우열을 말하기 어려우나 지는 꽃의 모습에는 깨끗한 것과 추한 것의 구별이 완연하다. 아직도 윤기와 광체를 남긴 꽃잎을 바람에 휘날리며 미련 없이 떨어지는 것도 있고 이미 시들어 보기에 흉한 꼴로 오래 매달려 있는 것도 있다. 김윤성의 `꽃`이란 시에  바라보면 볼수록 가깝고도 먼 얼굴 꽃이여/ 그대로 두면 한없이 고이 잠들어 버릴/ 너는 바람에 흔들리어 피었나니/ 일찌기 어둠 속에 반짝이던 너의 사념(근심, 걱정하는 생각)은/ 별빛처럼 하나 둘 스러져 가라.가람 이병기의 `가람문선`에  꽃을 보려하고 봄 오기를 바랬더니/ 밤 새워 찬바람 끝에 피려하던 꽃이/ 덧없이 퍼붓는 비에 그저 지고 말아라.꽃은 누구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깊은 사연이 있다. 꽃을 예찬한 김유정의 수필에 향기를 품은 보드라운 바람이 이따금씩 볼을 스쳐간다. 그럴 적마다 꽃 냄새는 하나 둘 팔랑팔랑 공중을 날며 혹은 머리 위로 혹은 옷고름에 사뿐 앉히기도 한다. 가지가지 나무들 사이에 낀 가로등도 밝거니와 그 광선에 아련히 비치어 연분홍 막이나 벌여 놓은 듯 활짝 피어 벌어진 꽃들도 곱기도 하다. 베란다 꽃으로는 양란, 풍란, 선인장, 나팔꽃, 봉선화 그 밖에 귀화식물 등이다. 화분에 심어 놓으면 못된 풀도 화초라 한다. 봄꽃도 한때라는 교훈도 있고 꽃이 없으면 열매도 없다. 창문 열면 천리향 냄새가 방안을 진동한다. 봄의 기운이 인간의 넋을 치유하듯 감사의 배려가 집안에 가득하길 기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