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일본에 의하여 약탈당한 조선본을 논함에 있어 먼저 서설(序說)적 논급으로,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지성이 깃들고 숨결이 통하는 납치당한 민족의 분신을 드러내어 관심권에 끌어들여 그 비운을 애석하게 공감하며 손때 묻은 친근감으로 함축된 예지를 풀어 헤쳐보고자 본고를 집필한다. 문화의 양상에는 정치적 경제적인 요소도 있으나 무엇보다 정신적인 요소가 더욱 중요하다. 이 정신적인 요소는 교화의 실행에 의하여 지식의 함양에서 성숙되며, 이 교화는 주로 도덕 및 종교적인 교육에서 파생된다. 그러므로 글을 지어 책을 만든 저서로서의 구성과 학자로서의 자질형성 및 학문으로서의 성립이나 그리고 한 나라의 문화가 발전되어가는 과정에서의 동인 부여(動因附與)는 무엇보다 서적이라는 매개체에 의하여 기록문의 흡수에서 여물어(成熟)가는 것이다. 이 글도 이런 데에 주안점을 두나, 주어진 주제상 그 과제를 다루어 임진 왜란 때 왜군들이 조선의 문전지적(文典誌籍)을 ①어떤 방법으로 약탈했으며 ②이것을 어떤 경로를 통하여 넘어 갔고 ③그것을 어떻게 분배하여 널리 펴서 활용했으며 ④정신 문화의 소산으로 이룩된 조선의 도서자료가 일본의 정치·사회·문화·예술·종교·사상 등에 어떤 영향을 끼쳐 민족 의식구조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소상히 밝혀본다.　2. 도서 약탈의 계락 신라 때부터 왜구의 침탈이 시작되어 고려 때에는 더욱 심하여 이성계가 1377년에 경상도·전라도에서의 왜구 토벌과, 1380년 운봉에서 왜구를 격파한 황산대첩이 있고, 1388년에는 이성계의 요동정벌 4불가론 중에 `거국적 원정의 틈을 타서 왜구의 침입이 우려되므로 불가`라는 상주(上奏)의 기록이 있다. 1389년 박위가 대마도를 정벌한 일과,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은 왜구침략이 극심하자, 남해 연안 일대의 주민 소개령을 내렸으며, 1419년에는 이종무(李從茂)·이예(李藝)로 하여금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토케하였다. 1423년 조선에 온 왜사 게이쭈(圭籌)·혼레이(梵齡) 등은 `고려대장경`의 원판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하고, 1424년에는 조선통신사의 이예 등이 일본에 갔을 때, 그 원판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구류당한 일이 있다. 일본에서는 여러차례 조선의 금속활자의 주조기술과 관찬 기록인 여러 서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와 같은 왜구들의 침탈 목표물의 품목에는 사람은 물론, 우마를 비롯하여 가재도구와 심지어는 아궁이에 불을 헤치는 부지깽이까지도 닥치는 데로 약탈해갔으니, 기록문화재인 전적도서는 그야말로 최상의 약취 목표물이었다. 포획당한 남녀 포로들은 번주 내지는 호족들에게 헌상되고, 일부는 포르투갈 무역선의 상인에게 팔리어 영원히 조국 땅을 밟지 못하는 불귀의 객으로 전락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약탈해간 도서는 호학 성주나, 그 가신들에 진상되고 대부분은 신설문고를 설치하여 이를 기본 장서로 소장하였다. 임진 왜란 때 도서의 약탈과 반출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일본의 많은 학문승들을 왜장에게 딸려 보내 조선으로 파견하였다. 이 종군승의 파견목적은 왜장은 지적 빈곤 내지는 무식하여 학문승들의 지성이 도서의 가치판별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조선서적의 약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적 고갈로 문화재적 가치성을 알아서 보다도, 전리품의 기호로 골동품적 취향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임진 왜란 직전의 양국 사이에 전운이 감돌 때 양쪽 나라의 사회적 환경과 배경의 풍조가 어떠했는가를 알아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출병의 본거지 규슈(九州) 북단의 나고야(名護屋)성을 1591년 9월에 축성하여 본영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1592년 1월 5일에는 조선침략의 전진기지인 이키섬에 병사들을 집결시켰으며, 이들은 여러 번(藩)에서 15세부터 60세까지 남자들로 군부(軍夫)에 강제로 징용된 사람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