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도 중세기 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文盲)이었다고 한다. 글은 성직자나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일반 서민들에게 책이란 신성하기까지 한 물건으로 치부(置簿)된다. 특별한 지식이 필요치 않고 근육노동만 시키면 되는 하층민들이 책을 읽고 지성(知性)을 가지는 것이 지배계층들에게 결코 달가울 리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반상(班常)이라는 카스트(caste)를 만들어 두고, 글은 귀한 양반들만 알면 되는 것이지 상것들이 글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양반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상놈이 어쩌다 숨어서 혹은 어깨너머로 글을 익혔다고 한들, 아예 제도적으로 등과(登科)의 기회는 열려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서민들은 모두 우민(愚民)으로 만들어 놓고, 귀족들만 지식을 독점하고 자자손손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며, 부귀영화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진보된 문명을 먼저 받아들인 이웃 섬나라 왜인(倭人)들의 침탈을 받자, 한 번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친 사건이 다름 아닌 1905년의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이은 1910년 8월 29일의 한일합병(韓日合倂)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종대왕은 왜 익히 써오던 한문이 있음에도 한글을 창제하였을까? `나랏말싸미 듕귁에 다라…` 즉, 한문은 중국의 글인데, 중국은 우리와 전혀 다른 문법체계를 가진 이민족(異民族)의 다른 언어이기에 우리말을 표현하기가 첫째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억울한 일이 있어도 어디에 신원조차 하기 어려웠던 무지한 서민들을 가여히 여겨, 누구라도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문자를 발명하였으니, 그것은 민족의 자존을 세우는 일이자 애민정신의 결과라 해도 괜찮을 듯하다. 만일 세종대왕께서 백성이 우민으로만 머물기를 원했다면, 굳이 그렇게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애써 창제했을 리가 없었을 것 같은데, 소위 사대부(士大夫)라 불리는 우리나라 귀족들은 한글을 언문(諺文), 즉 상놈의 글이라 천시하며, 여전히 모든 과거답안(科擧答案)은 한문으로만 작성하게 하여 그들의 카스트를 유지시켜 왔다. 뼛속까지 사대사상(事大思想)에 절어 있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글은 물론이고, 문화까지 중국을 닮지 못해 안달하여 받아들인 제례(祭禮)가 미풍양속으로 탈바꿈, 오늘 날 까지도 우리의 정신세계와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백성은 우민으로 남겨두되, 양반들은 한문을 읽으며 사대(事大)만 철저히 하면 그 기득권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수 세기에 걸쳐 우러러 모시던 중국이 쇠락해지자 조선의 기득권층은, 당시 힘의 비교우위에 있던 일본으로 사대(事大)의 대상을 변경한 것이 다름 아닌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만든다. 그런데, 충성을 맹세했던 일본이 또 갑자기 패망하자 그들은 다시 섬겨야 할 주인을 태평양 건너편에서 찾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아직까지도 그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사대주의는 아마도 구원이요 신앙일 터이다. 　해방 이후, 배우기 쉬운 한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 문맹자가 거의 사라지게 되자, 기득권들은 카스트를 유지할 새로운 방안으로 학벌주의를 만들게 된다. 무엇을 아느냐 보다는 어디 출신인가? 그런데 옛날 같았으면 어림도 없을 일, 더러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이변이 속출하게 되자, 불안해진 그들은 또 스펙만능주의와 신 세습체계를 고착시켜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아예 걷어차 버린다. 아무튼, 어떤 방식으로든 지배계층에게 피지배계층의 지성화(知性化)는 께름칙한 일이 아닐 수 없고, 따라서 정보 통제를 위한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그들은 이제 집중적인 투자로 대부분의 언론을 장악하는데 까지는 성공한 듯이 보였다. 그런데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다. 다름 아닌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 즉 지식의 보고인 인터넷과 정보 통제를 불가능하게 하는 SNS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세뇌나 우민화가 거의 불가능한 새로운 신 인류의 등장, 그들이 그렇게도 통제하려던 대상이 오히려 그들을 이제 원시인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는지들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우민화에 혈안이 되어있던 그들이야말로 이제 도리어 스스로 우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