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로 위에 형님은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무공훈장도 받았으나, 전상(戰傷)의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연유로 국가유공자가 되었지만, 나는 생각만큼 우리 형님이 자랑스럽지도 않았고, 일찍이 세계 여러 나라를 주유(周遊)하면서도 아직 베트남만은 가보지 않았다. 형님이 베트남 전상자가 되었는데, 나는 왜 베트남에 가기가 싫었을까? 베트남전은 세계 최대의 강대국인 미국과 오래 동안 유럽 강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던 아시아의 후진국 베트남과의 전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적 약소국인 베트남을 도우러 간 것이 아니라 강대국인 미국의 편에 서서, 미국의 용병으로 베트남에 참전한 것이며, 그 전장에서 벌어진 비인도적 전쟁범죄에 대해 들은바,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베트남의 어느 마을 비석에는 `한국군의 만행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비문이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는데,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파병된 우리 군이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들을 한 것일까?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아무런 원한을 가져야 할 역사적 사유가 없는, 지리적으로도 먼 나라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거기까지 가서 그토록 참혹한 살육전을 벌여야 했을까? 물론 당시 참전용사들은 단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오직 명령에 복종했을 뿐, 전쟁 중의 행위가 모두 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만행을 저지른 외군(外軍) 역시 어떻게 죄를 논할 것이며, 제 2차 대전 당시에 점령지에서 행한 독일군들의 죄악상도 합리화 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나는 고인이 된 형님의 무용담을 아직도 많이 기억하고 있다. 전장에서 곁에 있던 전우가 총격과 포격을 받아 처참히 분해되는 상황에서 인성(人性)은 완전히 사라지고, 거기엔 악마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장에서의 살인은 살인이 아니며, 살인을 많이 할수록 전공은 높아진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땅에서 행해진 일본인들의 만행을 잊을 수 없고,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육이오 전쟁 상흔 역시 쉬 잊혀 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베트남인들 역시 그 처참하고 야만적인 전쟁의 기억이 아직은 생생하기만 할 것인데, 가해자인 우리가 무슨 염치로 선글라스에 카메라를 어깨에 걸고, 그들 앞에서 우쭐거릴 것인가? 세계평화도 좋고, 자유수호도 좋지만 전쟁범죄도 범죄인 것은 분명하고, 가족이 짐승처럼 도륙당하는 것을 목도한 전쟁 피해자들 앞에 우리는 무릎을 꿇을지언정, 결코 그들 앞에서 거만한 관광객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니까 조용히 찾아가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더라도, 별로 있지도 않은 돈 자랑 하면서 엽색행각이나 일삼는 한국인 관광객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나는 한국인 비자를 든 베트남 여행이 더욱 꺼려지기만 했었다. 1970년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를 방문하여, 굿은 비를 맞으며 전쟁 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아 묵념하면서 사죄하였다. 우리 역시 베트남인들 앞에 깊이 사죄해야 한다는 것이 양심이고, 그들이 진심으로 용서했을 때 쯤 나는 베트남을 방문하게 될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들의 그 깊은 상흔이 언제쯤 아물게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지방 의원들 국회의원들 할 것 없이 무슨 연수인지, 시찰인지, 관광인지 줄줄이 베트남으로 향하고, 또 일반인들도 요즘 베트남 관광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을 보며, 착잡한 나의 심경을 여기 적게 되었다. 자식의 목숨 값으로 나오는 유족연금을 당신의 용돈으로 쓰기 싫다는 노모님의 완강함 때문에, 한 때 나는 그 연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고민을 했고, 지금은 그 돈이 고인이 희망했을 것 같은 용도로 쓰이고 있으리라 추측된다. 숱한 국가유공자를 탄생시키는 전쟁이 없는 그런 세상은 요원한가? 유공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의 희생자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유공자가 없는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궁극의 이상 사회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