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9년 10월 4일 국회에서 유정회 의원을 포함 공화당 의원 단독으로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를 제명 의결했다. 김 총재가 20여일 전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에 유신 정권에 대한 지지철회를 촉구 한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 물론 김 총재에 대한 제명의결은 청와대의 지시가 없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제명 사유는 `국회의원으로서 본분을 일탈하여 반국가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국회의 위신과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며 국회에 의원직 제명을 요구했고 야당의 극렬한 반대속에 여당 주도로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그러나 김 총재에 대한 정권의 제명조치는 민심의 반발을 불러 부마항쟁을 촉발시켰고 결국은 정권 내부 분란으로 유신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지금 여야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지난 12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과정에 나온 발언을 두고 양보 없는 대치를 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대북정책을 강도 높게 질타하는 과정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있던 여당 의원들은 일제히 "그만하라"고 외쳤고 원내대표단은 연단앞으로 나와 국회의장에게 거세게 항의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들어보라"고 맞고함을 치는 등 국회는 일순간에 난장판이 됐다. 여당인 민주당은 13일 나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발언을 문제삼아 국민모독혐의로 국회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으며 이에 맞서 자유한국당도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를 연설 방해혐의로 맞제소하는 등 강대강 충돌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 원내대표가 부연해서 말했듯이 `문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표현은 그전에 외신에서 그렇게 보도해 알려졌던 사항이다. 사실 현 정부 들어 일어나고 있는 남북관계 진전을 두고 국민들 사이엔 기대감과 더불어 안보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나 원내대표가 말했듯이 안보는 나라의 근간이다. 안보가 흔들린다면 북한의 도발을 눈으로 보며 살아온 국민들로선 불안감을 감출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나 원내대표는 현 정부 들어 나타나고 있는 한미동맹문제, 군사훈련축소, 전방초소 철거 등 우리의 안보태세 변화에 대해 걱정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이런 발언을 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지칭한 것이 여당입장에서는 충분히 불쾌할 수는 있으나 야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을 끊으면서까지 현장에서 그렇게 거세게 항의할 대목인지는 의문이 든다. 지금 대한민국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외신과의 언론인터뷰가 문제가 돼 제명당하던 권위주의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설내용이 못마땅해도 나 원내대표의 연설이 끝난 뒤 얼마든지 발언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할 기회는 있다고 본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필자는 우리 정치인들이 지나치게 당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정권이 바뀌어도 과거의 낡은 정치적 관행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여야의 공수만 바뀐 채 국민이 식상해 하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 모습을 정치인들은 답습해선 안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노력으로 힘들게 이룩한 것이다. 그런데 대화와 타협을 통한 성숙한 의회민주주의 대신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보던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려는 듯한 대결의 정치가 판치는 모양새다. 야당의 쓴소리도 경청할 줄 아는 여당의 통 큰 정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