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던 그의 눈에 어둠이 일렁였다. 그는 사나워진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꽃샘바람이 울부짖듯 불고 있었다. 갓 피어난 매화를 시샘하는 바람이었다. 세상도 우여곡절의 바람이 끊임없이 불었다. 그는 뉴스에 나오는 얼굴을 보며 역풍과 질풍을 일으키는 저마다의 분분한 이유를 생각했다. 진실은 역사가 증명한다는 말도 옛말이었다. 때때로 신선한 자극과 재조명이라는 명분으로 작가의 왜곡이 대중의 눈을 가려 정사보다 야사가 앎으로 변신했기 때문이었다. 소수의 역사학자의 객관적이고 조심스러운 주장보다 역사를 왜곡시키는 자극적인 매력, 이를테면 픽션이나 눈길 끄는 여론에 대중의 의식이 현혹된다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다수의 의식은 신뢰할 만한가? 　그는 이런 논지의 글을 발표했는데, 특히 픽션 작가들이 대중의 정신문화를 끌어올리는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지금의 사회 정치적인 상황을 옳게 판단할 능력을 기르는데는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지만 특히 문학의 역기능을 경계하라고 소설가 아무개 씨와 격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불현 듯 그 일이 바람 소리를 가르며 기억의 갈퀴를 세웠다. 　유명한 소설의 소재들이 왜 하필 불륜이며, 비정상적 성욕이며, 동성애자의 사랑인 거냐고, 그는 떠오르는 대로 몇 편의 소설을 거론하며 지나치게 열을 냈다. 문학도들이 좋아하는 누보로망의 선두주자라는 알랭 로브그리예 작품 `질투`는 전통적인 소설 기법을 뒤엎은 문학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극찬하지만, 아내를 의심하는 남편의 집요한 질투 이야기지 않느냐? 게다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고 극찬의 추천사를 써 준 나보코프― 미국의 출판사 네 곳에서 출간을 거절당한 문제적 사랑의 기록물인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어린 소녀를 대상으로 비정상적 성욕을 품는 것을 뜻하는 `롤리타 콤플렉스`를 만들어 낸 작가이다. 왜 나보코프는 `롤리타`를 통해 도덕적, 종교적으로 금기하는 이야기를 썼느냐고 다그치는 그에게 소설가 아무개 씨는 침묵을 지켰다. 　하나 더 예를 들겠습니다. 그는 소설가의 눈을 집요하게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도서관에 묵직하게 꽂힌 세계문학 전집 01번,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도 같은 맥락입니다. 　거미여인은 동성애자를 지칭하는데 정치범과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수감된 두 사람이 영화 이야기를 하다 사랑하게 된다. 물론 상반되는 세력의 갈등도 보여준다. 부르주아와 좌익, 극단적 성 해방주의자와 극단적 좌익주의자의 결합이라는 배경이 깔려있다. 서사의 흐름에 맞게 프로이트 성 이론의 각주를 아홉 개나 간지로 끼워놓았다. 그것은 동성애자의 성적 고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랑하기 때문에 위험을 불사하고 피살당하는 동성애자의 비극적인 사랑이 애잔하긴 하다. 그러나 결국 동성애자의 사랑 이야기로 동성애를 부추겨 문학의 역기능을 유발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해외에서 유명한 상을 차지한 작품을 보다가 불편해서 책을 덮었다는 어느 사서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소설가 아무개 씨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소설가는 인간의 본성을 가감 없이 파헤쳐요. 아름답기보다 추악하고, 의지가 나약하고, 교만한 인간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불편한 진실 앞에 설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문학이나 예술이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사람들의 인식이 선보다 악으로, 또는 타락에 무디어진다면 생각해볼 일이지요. 이 문학의 역기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독자가, 또는 극단적인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대중 의식이, 불편한 진실 너머의 메시지를 읽어내야 해요. `질투`의 작가 로브그리예는 이렇게 말했어요. 　―반대의 가정을 해보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다. 현실을 변화시킬 수 는 없다.(질투, 민음사, P57)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말이지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진실을 전하겠다는 말이지요. 이 책이 겨우 746부 팔렸다면 일반 독자는 짐작할 거예요. 비평가에게 노골적 혐오, 조롱, 비난을 받았음에도 사르트르, 까뮈, 브르통, 롤랑바르트, 앙드레말로 등의 대가에게는 문학적 실험을 독려하는 작품으로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어요.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비평이 분분해요. 한 작가의 작품에도, 세상사에도 극단적 호평과 악평이 가해지는 거지요. 호악이 엇갈리는 시선에 독자는 혼란스럽겠지요. 저는 작가는 자기의 세계관을 순수하고 거짓 없이 드러낼 때 작가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관람객과 독자에게 편승되어 흥행과 베스트셀러에 목표를 둔다면 그 작가의 진실은 변질되어 문학 예술적 순기능의 메시지는 희석되고 말아요. 어느 것이 진짜 옥인지, 작가가 노린 비겁한 꼼수는 무엇인지, 독자와 관객은 불편한 진실 속에 뒤섞인 메시지를 알아내야 해요. 　잠시 바람이 멎었다. 그는 몸을 가눈 매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양극의 혼란한 사태를 예리하게 주시해야 해. 누군가는 호, 누군가는 불호를 외치지만 그 너머의 진실을 바라봐야 해. 꽃샘바람도 세상바람도 곧 물러갈 것이지만, 비와 가뭄과 태풍까지 예상해야 해. 그게 자연이며 세상의 섭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