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들에게 대한민국만한 낙원이 또 있을까? 우선 치안 문제만 해도 우리나라만큼 안정되어 있는 나라가 그리 흔치는 않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행이 자유로우며 연애도 자유롭다. 우리와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지만, 알콜음료의 판매를 특정 허가지역으로 제한하고 있는 나라도 적지 않은데 반해, 우리나라는 그냥 어떤 장소에서라도 주류구입이나 음주가 매우 용이하며, 음주 후 웬만한 실수도 심신미약 상태로 간주하여 한없이 너그러운 나라(물론 음주단속은 좀 다르지만), 어디 그것뿐인가? 미신같은 토속신앙이나 사이비종교까지 포함하는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가 허용되는 나라, 돈만 있으면 암캐 부랄만 빼곤 뭐든지 살 수 없는 게 없는 나라, 거기다 권력만 잘 사귀면 웬만한 불법이나 탈법, 탈세도 슬그머니 눈을 감아주기가 일쑤이고, 재수 없이 걸려도 웬만하면 형의 집행을 유예해 주는 나라, 쥐뿔도 아는 것이 없어도 스펙만 만들어 놓으면, 평생을 울쿼먹고 행세할 수 있는 나라, 줄만 잘 서면 죄를 지어도 더러는 벌 대신 상을 주기도 하는 나라, 바로 그런 나라가 만일 대한민국이라면, 가진 자들에게 이보다 편리하고 살기 좋은 천국은 아마 없을 터이다. 그런데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인가? 오로지 이 좋은 세상을 지키고 보존하여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할 그들에게 보수(保守)를 버리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문이 아닐 수 없기에 그에 따른 저항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는 열차에 정원을 초과하는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면, 거기엔 반드시 편안한 좌석을 미리 차지한 기득권과 통로에 서있을 수밖에 없는 비기득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흔들리는 열차의 통로에 선 채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운 입석 승객들은, 편안한 좌석에 앉아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분명히 부러움과 시기심이라는 두 가지 감정을 가질 수가 있다. 그리고 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의 입장에서는, 좌석을 차지한 것이 무슨 잘못은 아닐지라도 공연히 서있는 승객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가지는 사람도 더러는 있을 것이며, 반대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도 좌석을 차지한 기득권과 입석밖에 얻을 수 없었던 비기득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더러는 통로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 자기 좌석을 양보하는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좋은 사람이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서있는 사람들을 위해 좌석을 양보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기득권은 악(惡)이요. 비기득권은 선(善)이라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고, 따라서 보수는 악이요. 진보는 선이라는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만, 승차권이 발매되는 과정의 공정성이 문제가 되는데, 줄을 서 있는 사람들과는 별개로 좌석권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발권되었다면, 서있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증오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이런 경우에도 사람들은 두 부류의 행동양식을 보이게 된다. 하나는, 억울하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여행은 해야 하고, 혹시 모를 앉은 사람들의 아량을 기대하며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며, 또 다른 하나는 좌석을 탈취하거나 아예 열차를 세우려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어느 편에 속하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의 경우에 해당되기가 쉽지 않을까 한다. 기득권과 비기득권은 선과 악의 기준이 아니지만, 가진 자의 천국은 결국 없는 자의 땅위에 지어진 것이기에, 가진 자의 겸손이 더욱 요구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득권의 세습은 기회균등의 원칙에도 크게 어긋나기 때문에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 될 수 없고, 당대의 부(富)가 사회로 환원되는 것은 선행이 아닌 당연한 의무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마치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의 특등 승객도 서울역에 도착하는 순간 특등 좌석이라는 기득권이 사라지게 되는 것처럼 모든 기득권은 한시적인 것이며, 그 기득권의 취득과정이 또한 공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사회는, 암표를 가진 자들이 그 암표를 다시 양도하려들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나쁜 사람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