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물질이 많이 쌓여있는 컵에는 아무리 맑은 물을 담아도, 컵 속의 물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일생동안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먼지들 때문에 사람이 맑은 정신을 가지고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만, 마음이라는 오염된 그릇 속에 부유하던 탐욕의 찌꺼기들을 조용히 침전시키고 나면, 맑고 명료한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즉, 욕(慾)이 침전되면 진(眞)이 떠오르고, 진(眞)을 알면 혹(惑)이 사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재물을 탐하는 물욕(物慾), 이성을 탐하는 애욕(愛慾), 권력이나 유명(有名)을 탐하는 명예욕(名譽慾), 음식을 탐하는 식욕(食慾), 잠을 즐기는 수면욕(睡眠欲), 수면욕은 편안함을 탐하는 안락욕(安樂慾)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다섯 가지 욕심을 오욕(五慾)이라 하는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인간사(人間事) 모든 것이 오욕과 유관(有關)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잘 관(觀)해보면 원인은 단 하나, 모든 것이 치(痴)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경(經)에 이르기를 만악(萬惡)의 근원이 치(痴)라 하였는가? 나방이 불빛에 끌려 제 죽을 줄을 모르고 불로 뛰어들듯이, 사람들은 모두가 욕심에 끌려 천 길 낭떠러지를 향해 앞을 다툰다. 영사기에 불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영상을 보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지만, 영화가 끝나면 그 모든 것이 다 헛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것들이 오욕(五慾)을 일으키고, 그 오욕이 오만가지 고뇌를 만들지만, 인생이라는 단막극이 끝나면 거기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영웅호걸들이 영욕의 세월을 거듭했지만, 그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영웅호걸이나 범생필부(凡生匹夫)나 우주 공간을 떠도는 한 점 먼지같은 이 혹성(惑星)에 잠시 머물다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은 다를 바 없는 데, 어떤 이들은 살아서 다 채우지 못한 욕심을 죽어서도 안고 가려한다.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고 더욱 심한 갈증을 느끼듯이, 욕심은 채울수록 채워지지 않는 속성 때문에, 욕심을 내는 것도 문제지만 버릴 수 없는 욕심을 버리고자 하는 것 또한 부질없음이다. 대양 위를 표류하는 자가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느끼면서도 바닷물을 마시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즉, 물은 물이지만, 그 물 속에 더욱 물을 부르는 소금기가 많다는 것을 익히 알기 때문이 아닌가? 사람이 탐하는 그 모든 것이 다 바닷물과 같아서, 한 번 취하면 더 많이 취해야 하는 악순환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으로 족하다. 즉, 욕심이란 노력으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가진 속성을 아는 것이 먼저이고, 욕심의 실체를 알고 나면 굳이 욕심과 싸울 일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데, 바꾸려는 생각이 또한 욕심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으로 세상을 바꾸려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자신의 치부를 가려주던 낡은 옷 한 벌과 안경 하나만을 유품으로 남긴 인도의 `간디`는 아무에게도 무소유(無所有)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을 물리치지 않았는가? 끝없는 탐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제도와 정치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무욕(無慾)의 삶이란 아무것도 가지지 아니한 가난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낼만한 대상의 허망함을 직관하는 데 있고, 우리의 의식이 지어낸 실체 없는 망상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영욕이 본래 있지 않음인데, 영욕의 세월은 다 무엇인가? 선(善)이 다만 악(惡)하지 않음이듯이, 영욕이 없는 적정(寂定)한 삶이야말로 이 우주를 소유한 만큼 넉넉한 삶이 아닐까? 알지만 행하지 못하는 것이 또한 지극한 어리석음이라. 정오에 나는 한 뼘도 안 되는 내 그림자를 밟고 있었지만, 해가 서산마루에 가까우니 너무 길어진 내 그림자를 보게 된다. 저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면, 내 그림자는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인데, 누구나 자신의 그림자가 길면 길수록 사라질 때가 되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