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골목길의 문패를 보면　언젠가 들은 이름 같아서　어디선가 만난 이름 같아서　도무지 낯설지 않다　　그 집 하늘의 하얀 낮달이　장독 뚜껑을 열고 된장을 뜨는　주인 여자의 앞치마 같아서　아주머니, 하고　다정히 부르고 싶어진다　　대문에서 두 발을 동당거리며　무언가 사달라고　막무가내 떼를 쓰는　아이의 떼가 막무가내 아름답다　　마당가 조그만 화단의　낯익은 일년생 화초　그 화초 사이로 생쥐 한 마리가　나를 보고 까만 꽃씨의 눈을　깜박 거린다　　주인이 직접 기둥에 망치로 못을 박고　매달았을 문패　문득 다시 들리는　떵떵! 즐거운 망치 소리가　세상을 온통 살 만 한 집으로 만든다.                        　     　-이준관　　 골목길 풍경이 낯설지 않고 가슴을 따스하게 적셔주는 동시 같은 詩다. 경주는 오래된 골목이 참 많고 골목이 정겹고 골목이 매력적인 도시다. 끝인가 하고 가보면 또 다시 어디론가 연결되는 골목들, 경주는 사라진 골목도 많지만 아직도 옛날 골목이 많이 숨 쉬고 문패마저 다정한 도시다. 　생각해 보시라 몇 백 년을 이어 오는 경주의 골목들, 골목마다 얼마나 많은 서민들의 역사와 삶의 애환이 묻어 있겠는가. 　납작납작한 키를 낮춘 집들, 미로처럼 엉켜 이어지는 골목들, 옹기종기 얼굴 맞대고 사는 오래된 이웃들, 먼 조상들의 발소리가 들리고 문득 만날 것도 같은, 찌든 우리들의 삶의 냄새 엉켜 있는, 지금은 사라져 버린 `쪽샘` 골목, `인왕동 옛 골목`을 떠 올려 보시라. 　골목길 끝에 첨성대가 보이고, 골목길 끝에 왕릉이 나나난다. 나는 틈이 나면 `쪽샘 골목` `인왕동 골목` 길을 자주 걷는다. 나는 `골목 답사가`(요즘은 이런 이름의 직업도 있다!)는 아니지만 낯선 골목길 걷기를 사랑 한다. 　골목길을 산책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발견하는 `발견의 즐거움`도 있다. 이름 없는 `점집`들, 요즘도 대나무를 세워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무당 집`들, 천년 고도를 기념하는 이쁜 벽화가 그려진 골목 빵집들, 막걸리 집들, 한복집들, 그리고 시인이 노래 한 것처럼, "화단에 햇살을 받고 있는 일년생 화초들", "이름을 들어 본 것 같기도 한 낯설지 않은 문패들"… "화초 사이로 까만 꽃씨 같은 눈알을 굴리는 생쥐들"이, 들판을 걷다 발견하는 들꽃송이들처럼 반갑다. 어느 집에선가 누가 이사를 와서 새로운 "문패를 단다고 떵떵 못질하는 즐거운 망치소리가" 들릴 것 같은 오후다. 경주의 맑은 오후가 참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