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근대사에서 우리국민이 외국으로, 그것도 국가차원에서 파견되는 경우를 떠 올리라면 2번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월남 파병을 위해 부산항에서 큰 배에 오르는 광경이고 또 하나는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오르는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의 모습이다. 바로 후자의 모습이 연출되던 그날이 55년전 오늘, 1963년 12월 21일 이다. 이날은 광부 123명이 비행기에 탑승해 처음으로 파독된 날이다. 　광부와 간호사의 파독은 1960년대에 열악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추진한 경공업 위주의 수출지향정책과 관련이 있다. 이 정책으로 농촌 붕괴현상을 초래했고 그 결과 막대한 실업과 외화 부족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는 광부와 간호사와 같은 노동력의 해외송출을 추진했다.  　광부의 독일파견은 1963년 12월 16일 한국정부의 임시고용계획에 관한 한국노동청과 독일탄광협회 간의 협정에 의해 이뤄졌다. 독일의 광부인력 부족현상을 해소하는 동시에 미국이 독일에게 요청했던 한국 재건지원의 약속 이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고자 했던 독일정부의 의도와, 실업난과 외화획득을 위해 해외인력수출을 원했던 한국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이뤄진 조치였다. 19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000여 명이 지원할 정도로 당시 한국의 실업난은 심각한 상태였다. 3년 계약의 파독광부들에게는 매월 600마르크, 약160달러의 높은 수입이 보장되었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로 가기를 희망했다.  　1963년부터 1976년까지 파독된 광부는 7,936명, 간호사는 1만1057에 이르는 등 모두 1만8993명에 이른다.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도 1억2천만 달러에 달했다. 경제개발에 큰 종자돈이 된 것은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순조로운 평화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1963년에서 1979년까지 독일에서 광부 65명, 간호사 44명, 기능공 8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작업 중에 사망한 광부가 27명, 자살한 광부가 4명, 자살한 간호사가 19명이나 됐다.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엿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간호사 인력이 태부족이라 한다. 노령인구 증가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때문이다. 간호사 자격을 따고도 장롱 속에 고이 보관하고 있는 경력단절 간호사를 사회로 끌어내는 일이 시급해졌다. 정부의 올바른 정책에다 간호사를 대하는 사회의 인식 또한 달라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남아에서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간호사들이 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논설위원 김경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