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바도르 달리입니다. 멀고먼 저승의 강을 왜 건너 왔느냐고요? 나에 대해 쓴 글을 본 어떤 독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더군요. 내가 나서서 좀 더 부언하고 싶었어요. 한 사람이 의아스러우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니까요.  　내 그림, 내 고통, 내 꿈 이야기를 하자면 한 페이지로는 부족하거니 싶어 이해했지만, 목구멍에 뭔가가 붙은 것 같아 저승에서 밤을 달려 왔어요. 무엇보다 사연 많은 내 그림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저 죽음의 세계인 하데스는 들어가기보다 나오기가 어렵지요. 아니 불가능하지요. 그러나 문화는 4차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같은 예술의 혼령은 문화라는 시공을 넘나들 수 있지요. 하지만 증오의 강 스틱스, 망각의 강 레테, 불의 강 플레게톤, 시름의 강 코키토, 비통의 강 아케론을 건너서 여기로 오는 여정이 쉽지는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께서 알아주셨으면 해요. 　내가 누구냐고요? 그림에 관심 없는 분들은 물론 잘 모르실 테지요. 저는 무의식을 탐구한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지요. 인터넷으로 사전을 검색하면 20세기 미술사에 저보다 더 큰 족적을 남긴 화가는 없다고 나와요.  　그런데 내 그림은 보기에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아요. 내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나의 고통스러운 환상이지요. 나는 늘 꿈과 무의식에서 헤맸어요. 그곳은 나의 상처와 고통과 욕망과 그리움 같은 것이 깊숙하게 감추어져 있지요. 저의 대표작은 `기억의 고집`인데 지난 칼럼에 간략하나마 소개되었더군요. 　나로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소개되길 바라지만 다음 기회를 기다리도록 하고요. 오늘은 비교적 이해가 쉬운, `6세 여아가 된 달리가 잠자는 강아지를 보기 위해 바다를 들다`라는 긴 제목의 그림에 대해 말씀드리겠어요. 　부모님은 저에게 잘 해주셨어요. 하지만 내게서 죽은 형을 찾지 말고, 부디 나를 나로서 봐달라고 빌었지요. 나의 힘이요, 고통의 동반자며 치료자였던 갈라와의 결혼 때문에 나를 파문하신 아버지, 10년 연상의 갈라가 누군가의 아내라는 사실은 아버지의 권위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요.  　저는 어쩔 수 없이 당신을 떠났지만, 나의 근원이신 아버지 당신을 사랑했어요.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너무나 원한 나머지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오이디푸스 기였던 여섯 살, 그때부터 히스테리가 시작되었어요. 깊은 기억의 웅덩이에 빠져 오랫동안 허우적거렸지요. 　오이디푸스 신화 아시지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살게 되리라는 예언 때문에 산속에 버려진 오이디푸스―그는 자라나서 예언대로 친아버지인 줄 모르고 라이오스를 죽이고, 훗날 왕이 되어 친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어요. 후에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목을 매어 죽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후벼 파고는 딸 안티고네와 방랑의 길을 떠나지요. 프로이트 선생은 이 신화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착안했지요. 　남아에게 동성인 아버지가 경쟁과 질투의 대상이 되어 거세 공포증을 일으킨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요. 나는 프로이트 선생의 `꿈의 해석`과 무의식 이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깊이 공감했어요. 덕분에 나 자신의 무의식을 분석할 수 있었어요. 　프로이트 선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위에서 말한 그리스 신화에서 착상했지요. 여아가 아버지에게 애착하고, 동성의 어머니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은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하는데 내 경우는 역(逆)오이디푸스 콤플렉스였어요. 청년이 되기까지 여전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원만한 인간관계는 물론 남녀관계도 정상적으로 맺지 못했어요. 성 공포증이 나를 비정상으로 만들어갔지요. 　그런데 이 불행한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갈라를 보내주셨어요. 갈라 덕분에 내가 아버지에 대한 역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신경증 환자에서 위대한 화가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을 독자 여러분은 믿으시겠어요? 갈라의 사랑이 나를 치료한 겁니다. 비로소 나는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어머니처럼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머니보다 더 어여쁘고 어린 6세의 달리를 그렸지요. 아래 그림을 좀 볼까요. 　여자 아이가 도화지 같은 큰 바닷 자락을 들고 있지요. 바다 밑에 숨은 강아지를 보려고요. 바다는 내 어머니지요. 현실이 무의미하고 허망해서 무기력했던 내가 이제 바다 같은 내 어머니 옷자락을 들고 강아지 같은 다정한 아버지를 꿈꾸어요. 　나는 다른 히스테리 환자처럼 캄캄하고 깊은 무의식의 샘에 빠져 있지 않고 벗어났지요. 어릴 적 그토록 꿈꾸던 환상의 유희가 내 삶과 그림 속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모든 것은 사랑하는 갈라 덕분이지요. 　성 불감증은 어느 새 사라졌고 자식도 낳았어요. 아버지 어머니를 회상하며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을 응시할 만큼 나는 치유되었어요. 내 무의식의 깊은 샘물이 세상 밖으로 흘러넘치기 시작한 거지요.  　`기억의 고집` 에 그린 단단한 황금시계를 기억하나요? 시계 위에 벌레가 오글거리지요. 갈라와 나는 다른 시계처럼 흐물거리지 않고 어떤 벌레가 침투해도 끄떡없는, 단단하고 귀한 황금시계처럼,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요. 이처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게는 사랑이 필요했어요. 여러분, 사랑하며 살아요. 사랑은 영생과 같은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