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타성인가 의지인가? 동서고금에 걸쳐 삶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 사람들이 잘 찾는 장소, 즉 `자살바위`라는 곳이 있다.  　우리 역사를 거슬러 가면, 망국의 한을 안은 채, 치욕의 삶을 피해 삼천 궁녀들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부여의 `낙화암(落花巖)` 이야기가 있고, 또 내가 어릴 적에는 워낙 모두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어서 인지는 모르지만, 자고 깨면, 어느 다리에서 누가 몸을 던졌다는 얘기는 심심찮게 듣던 소리였는데, 당시 하나뿐이던 서울의 한강철교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Golden Gate) 역시 그 화려한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자살 포인트로 너무나 애용(?)되어, 한 때는 그 다리에 자살방지초소 까지 운영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암울한 비상(飛上)을 위한 장소 선택이 요즘은 너무나 쉬워졌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순간적인 절망과 충동이 자칫 자신의 집 베란다나 복도를 자살바위로 선택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께가 겨우 일 센티도 안 되는 유리 한 장 사이로 이승과 저승이 갈라져 있다고 해야 할까? 　과연 당신은 일생을 통해 죽음 앞에 서 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가? 삶과 죽음은 타성과 의지의 싸움일 수 있고, 누구나 그 미묘한 균형 위에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 중에 특히 위험 군이 있는데, 바로 굳이 삶의 이유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의 삶에, 반드시 살아야 할 무슨 이유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저승이 어떻게 생겼는지? 결코 가본 적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고달픈 삶이라도 삶이 죽음보다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쉬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을 것이기에 그런 이유가 만들어 진다. 　그런데 미국의 한 억만장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더 기력이 쇄해 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방귀만 뀌고 있어야 한다면 차라리 안락사(安樂死)를 시켜 달라` 더러운 개똥밭도 아닌 안락한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꼭 무슨 이유를 찾게 된다. 그러니까 전자의 경우는 타성이 승하고, 후자의 경우는 의지가 승한 예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가 서양문명을 받아들이고 고층빌딩을 쌓아 올리면서, 사람들이 자꾸 고층에서 떨어지고 있다. 얼마 전, 절대로 그럴 것 같지 않았던 해학이 넘치던 한 정치인의 죽음뿐만 아니라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의지가 타성을 압도해가고 있다. 　죽을 의지와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 죽은 자를 욕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지에 의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기에, 최근 서구의 일부 국가들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삶이 너무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최후의 현실도피 수단으로 안락사를 허용한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들어, 비록 자기 목숨이라도 하늘이 준 생명을 임의로 결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러나 사람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게만 주어진 천부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특정 종교에서는 고통을 피하지 말라한다. 지금 받는 고통은 자신의 업식(業識)에 따른 것임으로, 그 과보(果報)를 받아 지금 업장소멸 (業障消滅)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다음 생으로 그 업이 윤회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생을 연장하려 애쓸 것도 없고, 굳이 앞당길 것도 없다는 얘기를 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