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선생님, 나는 이제 85세가 되었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오니 선생님을 흠모하고 열렬히 매달렸던 젊은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의 정신은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고흐처럼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을지 모릅니다. 　프로이트가 살바도르 달리의 말을 들으려고 머리를 약간 내밀고 침상 곁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달리보다 48년 앞에 태어난 프로이트는 달리의 나이 35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무슨 얘기인가, 의아심이 들겠지만 이것은 임종 전 달리의 무의식을 말함이다. "37세에 권총 자살한 고흐에 비하면 자넨 축복받은 인생이네" 프로이트는 자신의 나이 34세에 세상을 떠난, 세 살 위인 가련한 고흐를 생각하며 탄식하듯 말을 이었다.  　"그가 내게 정신분석을 받았다면 자네처럼 현실을 견디어냈을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네. 자넨 고작 31세에 편집증에 관해 쓴 글을 봐달라고 나를 찾아왔지. 혈기와 자만이 대단했어. 그 광기가 자네를 대성시킨 셈이지. 내가 정신분석으로 자네의 무의식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상종하기에 쉽지 않은 인물이었지. 자네의 그림을 보고나서야 모두가 자네를 이해하고 찬사를 보냈어" 프로이트는 동그란 검은 테 안경을 살짝 코 위로 끌어올리며 그를 내려다봤다.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아니, 선생님의 무의식 이론에 제가 빠지지 않았다면 저의 존재도 없었을 테고, 20세기의 초현실주의는 현실의 좁은 구멍 속에서 하품을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겠지요" 살아서 최고의 그림값을 받은 피카소처럼 자신도 생전에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달리는 꿈만 같았다.  　프로이트는 감회에 젖은 눈으로 이제 이승의 강을 건너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려는 이 노장 화가를 들여다봤다. 꼬부랑한 검은 콧수염도 허옇다. 예술의 천재, 초현실주의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친 그는 사랑하는 아내 갈라가 세상을 떠난 후 파킨슨 병을 앓았고, 자살을 시도했고, 화상 수술을 받았고, 폐렴과 심장병 합병증으로 응급실을 드나들다 오늘의 임종에 이르렀다. 　그는 끊길 듯 이어지는 숨을 쉬어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선생님은 아시지요? 제 이름이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을요. 어머니는 뭐든 내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셨어요. 무뚝뚝하고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내가 아니라 죽은 형이었어요. 나는 분노했어요. 8세까지 침대에서 대소변을 봤어요. 여성의 성기를 처음 본 날 애완용 박쥐를 물어뜯기도 했어요. 두 번이나 퇴학당한 문제학생이었지요. 예를 들면 미술학교에서는 성모상을 저울로 보인다고 했고, 심사위원이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았어요. 나는 정상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소녀의 첫 키스를 받아도 무감각했어요. 그러던 중 어머니가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제 나이 17세였어요. 그 후 외설적인 그림을 자주 그렸어요. 내가 연출한 무성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를 보셨나요? 여자의 눈을 깊게 베는 섬뜩한 장면 말이에요. 쾌감을 얻기 위해 어머니의 초상에 침을 뱉었다는 글을 잡지에 발표해 아버지의 분노를 샀지요. 게다가 나는 성 공포증이 있어 여자와 관계를 가지지 못했어요. 늘 강박적으로 자위를 하며 방황했어요. 그런 내가 어떻게 이런 위대한 초현실주의의 대가가 되어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겠어요?" 　"이 사람아, 그거야 갈라를 만난 덕분이지. 그래서 내가 자넬 축복받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듣고 있던 프로이트가 대꾸했다. 달리의 고백이 이어졌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함께 살았어요. 갈라의 남편인 시인 엘리아르가 죽은 후에 정식 결혼을 했지만, 갈라가 10년 연상의 유부녀라 해서 나는 아버지에게 파문당했어요. 하지만 나는 갈라를 만나고서야 생의 안식을 얻고 히스테리에서 벗어났어요" "그렇지, 단테에게 연인 베아트리체가 있다면 자네에게는 갈라가 있지. 하지만 단테는 영원히 멀리서만 사랑했지" "비로소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내 그림 `기억의 고집`에 저의 무의식을 다 쏟아냈지요. 시계가 흐물거려 보였어요. 금지된 욕망의 시계는 과거에 멈춰버렸지요. 거기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를 시계로 그려 넣었어요." 　"내 자네를 분석해보겠네. 보통 아이는 3세에 자기 사랑에서 대상 사랑으로 욕구가 전환되는데, 어머니의 과잉배려로 양육된 자네는 8세까지 자기애착 상태에 고착되어 자기애 성격을 갖게 된 걸 자네도 후에 인식하게 되었지. 어린 시절처럼 현실은 자네 뜻대로 받아주지 않았지. 자네는 우울한 현실을 초현실 그림으로 방어한 거였어. 서른하나에 벌써 자서전을 쓰는 것도 모자라 나 자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니, 얼마나 유치한가 말이네. 그러나 한편 자네를 이해하네. 자기 과시로 존재감을 느끼려는 것도 살아내려는 수단인 게야. 애착 대상이 갑자기 죽을 경우, 상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탓인 양 자책하고, 자신을 혼자 남겨둔 것을 원망하는 마음이 자네가 어머니의 초상에 침을 뿌리는 행동으로 나타난 거네. 무의식적인 우울감정의 표현인 게지. 물론 자네는 위대하네. 자신의 트라우마를 초현실주의 예술로 승화시킨 그 의지를 치하하네" "그러나 선생님, 이제 어찌 합니까. 나는 죽어갑니다. 영영 갈라에게 갈 수도 없고, 내 영혼은 다시 그 무서운 기억을 고집하며 지옥에서 헤맬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갈라가 세상을 떠나자 달리는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는가. 평생 동안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는데 일생을 바쳤지만 완전한 것은 없었다. 어떠한 유형의 인간은 유아처럼 사랑에 맹목적이지만, 궁극에는 헤어지고 죽음을 맞고 육신은 썩을 뿐이다. 영생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에게 영생이란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무신론자인 자신이 그것을 믿을 수만 있다면, 만약에 지금 임종에 처한 달리와 갈라와 가련한 고흐가 신을 믿었다면, 신에게 영혼을 의탁했다면, 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저 무한의 세계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에게 늘 했던 그 친절한 어조로 숨을 모우는 달리에게 말했다. "천재 화가 살바도르 달리여, 지금도 늦지 않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