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중앙정부 구 총무처에서 공무원 연금분야 제도 담당 사무관으로 재직할 때였다. 한국의 법체계에서 당연한 것 같았지만 공무원에게는 왜 `퇴직금`이 없는지를 의심했다.  　한편 노동법(근로기준법)상 공무원도 근본적으로 근로자서의 지위가 인정되고 있었다. 일반근로자가 퇴직하면 퇴직급여로서 연금 대신에 그 재원을 사용자가 부담하는 `퇴직금`이 있었다. 공무원이 퇴직하면 공무원연금법에 의한 퇴직급여로서 연금 또는 일시금이 있었다. 이는 그 비용을 사용자인 국가·지방자치단체와 공무원 개인이 분담하는 것이며 `퇴직금`에 갈음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8년에 국민연금법이 시행되어 일반근로자는 기존의 퇴직금제도 외에 노후보장을 위한 국민연금도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공무원에게도 사용자인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재원 부담하는 `퇴직금` 도입을 검토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예산이 지속적으로 소요될 급부 항목을 `신설`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본 공무원의 `퇴직수당` 제도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서 `때`를 기다렸다. 매년 초 사업계획 보고 시에 제기했으나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묵살되었다. 　그렇지만 `때`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신년도 업무계획에는 참신·획기적인 일을 해보라는 방침에 따라 다시 제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보류되었다. 며칠 후 당시 K과장은 잘 추진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부처 전체적으로 획기적인 신규 프로젝트가 없었던 것 같았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 `때`는 환경 변화로 다가온다. 당시 이미 제도적으로 국민연금이 도입되어, 비록 퇴직금 수준이 다소 조정되기는 하나 모든 근로자의 퇴직급여가 퇴직금과 국민연금으로 2원화 시대가 도래된 것이다.  　이 환경 변화에 맞춰 공직에도 기존의 연금 외에 사용자가 지급하는 `퇴직금(퇴직수당)`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수립했다.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다음으로 추진주체의 의지가 생겼다. 그동안 너무 벅찬 일이라 엄두를 못 내다가 정책의지의 변화가 온 것이다. 특히 실무 책임자인 K과장은 논리와 추진력이 탁월하고 네트워크도 원만했다. 핵심적인 인적 요소가 갖춰진 것이다. 　필자와 담당 주무관인 L씨는 뛰었다. K과장이 문을 열어주면 우리는 자료와 논리를 들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상급기관 보고가 된 후 부터는 정부 예산이 추가 소요되는 사업인 만큼 예산 담당부처인 당시 E기관과의 합의가 최고 관건이다. 퇴직수당의 기본논리는 당연하고 도입 시의 소요 예산과 그 후속 연차적 재정 영향 등 다양한 분석과 각 경우의 대안까지 필요하다. 그 해 E부처 협의차 방문한 횟수가 밤낮 오십 번은 되었을 것이다.  　학계 등 사회 일각의 반대 논리도 상당했다. 전투 같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국회 협의하러 다닌 횟수도 스무 번은 넘었을 것이다. 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던 무렵 그 어느 날도 국회에서 돌아오니 책상에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신명을 바쳐 함께 일한 E부처 사무관 J씨의 전화 메모였다. S종합병원에 응급 입원해 중병 초기진단으로 수술 절차를 밟고 있었다. 독한 여름날의 업무 스트레스 때문인가 싶어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수술은 잘 되었으나 그 후 업무 강도가 낮은 지방조직으로 전출을 갔다. 같이 고생하던 그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보고 싶다. 　개정 공포법안이 통과되던 국무회의에서 당시 K국무총리는 `오늘 우리는 역사적으로 공무원의 퇴직금을 도입하는 의미 있는 의결을 했다!`고 말했다. 모든 일에는 분명히 때 즉 `타이밍`이 있다. 이는 환경조성의 문제이며 특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근본적인 변경을 도모(圖謀)할 때는 더욱 중요하다. 　조성되었는지의 판단은 주체 측의 몫이다. 판단이 어려우면 전문가 자문을 구해보면 된다. 타이밍이 아니면 기다려야 한다. 반대로 이를 놓치면 대부분 다시는 `때`가 오지 아니한다. 다음으로 추진주체의 의지와 역량이 필수적이다. 논리뿐만 아니라 추진력과 대내·외 협력체계까지 포함된다. 추진과정에서 저항을 뚫고 나가는 응용력과 강단도 필요하다. 전력투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