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 포항을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는 대흥동 舊)포항역사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도심개발의 시작이라는 명분으로 4차선 도로가 개설되었다. 게다가 아련한 추억이 있는 역전파출소, 우현동 작은굴, 나루끝철로, 육거리분수대, 오거리 탑, 구) 포항시청, 교육청, 송도백사장, 포항호텔, 아카데미극장, 최근에는 지진의 여파로 문화원과 북구청까지 철거 되었다. 　아마 중앙상가에 자리하고 있는 우체국마저 없어진다면 포항의 역사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먼 여행길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포항시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옛 추억이 남아있지 않아 한동안 혼란스러울 것이다. 　포항역은 동해남부선의 시종착역으로 1918년 11월 1일 영업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 1964년 9월~1973년 3월까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제2해병여단에서 청룡부대 깃발을 달고 장병들이 이국만리를 떠나기 위해 가족과의 환송 장소로도 유명세를 떨치던 곳이 바로 포항역이다. 또한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前 대통령과 여, 야 유명 정치인들이 찾아와 시국연설을 했던 민주화 상징의 성지이기도 하다. 　목숨을 걸고 비장한 각오로 베트남 전쟁 참여했던 이들이 살아서 돌아와 각처에서 바쁘게 살다가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막상 대흥동에 위치한 포항역을 찾았으나 남아있는 흔적이라곤 걷어낸 철길에 앙상한 나무와 잡풀만이 듬성듬성 을씨년스럽게 나부끼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자 허탈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무것도 남김없이 다 파괴해 버린 포항만이 가진 역사(歷史)를 후손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기성세대는 난감하다. 일부시민들은 100년의 굴곡의 역사(歷史)를 지킨 포항역사가 거기 있었고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포항역사가 사라졌다는 것에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현존하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포항만의 정체성을 가진 유일한 공간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포항역사는 그 품격과 나이테를 느낄 수 있는 도시의 문화로 비록 철거되었지만 비통한 심정이다. 건물은 비록 협소하고 낡아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요즘 붕어빵 찍어내듯 똑같은 도로, 똑같은 아파트로 채워지는 것이 과연 도시가 필요로 하는 도심 재개발인지 묻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장소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이가 같은 기억을 느꼈다고 그리고 함께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장소가 포항역사가 아니겠는가? 　철거는 쉽게 언제든 할 수 있지만 한 번 철거된 건물을 다시 되살릴 수 없는 것, 포항시에서는 舊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현재보다 축소된 건물을 폐철도 공원 조성과 함께 건립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드라마 세트장과 같고 마네킹과 같은 짝퉁 건물이 舊 역사의 장소성과 상징성을 대신할 수 없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철거당시 학술회나 시민공청회를 통해 서울 숭례문처럼 로터리를 만들어 우회하는 문화광장으로 보존 했어야 했다. 결국 편하기 위해 좀 더 빨리가기위해 위정자들의 안이한 발상에 한 순간 100년을 지킨 우리의 역사, 포항역사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