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티어링(orienteering 또는 OL) 훈련을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산과 들의 여러 정해진 지점(post)들을 거치며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최종 목적지에 정확히 먼저 도착하는 것을 겨루는 경기이다. 　개인별 경기도 가능하나 공·사 조직에서 신규채용 직원 적응훈련의 일환으로 상황판단 역량·협동심 등을 함양하기 위해 주로 분임 또는 조를 편성해서 실시되어 왔다. 주간뿐만 아니라 야간에도 가능하며 종종 기간(基幹) 직원들의 워크숍에서 시행되기도 했다. 　신입직원으로 처음 해 본 팀별 오리엔티어링은 야간게임이었다. 사전 교육에서 안내하기를 독도법을 활용해서 각 포스트에 도착하면 훈련담당 교관들이 배치되어 있으니 그로부터 과제를 받아 신속히 해결하고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한겨울 밤 11시경, 어둡고 추운 야산의 숲 속에 위치한 포스트 3을 찾아 갔을 때였다. 포스트 근처에서 우리보다 먼저 갔던 분임을 만났다. 포스트에 교관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다음 포스트로 가는 길이니 우리도 돌아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포스트에 도착은 하고나서 그 다음 행동을 해야 하므로 포스트 3지점에 가보니 역시 교관이 없었다. 한참을 찾다가 우리도 그냥 포스트 4를 찾아 떠났다. 교관은 어딘가에 숨었을까 아니면 아예 교관 없는 포스트였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포스트 3의 교관은 정확히 거기에 있었다. 다만 나무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뒤통수를 몽둥이로 맞은 느낌이었다. 분임 몇 개가 그 포스트를 왔다갔으나 오직 좌우 평면에서만 찾았지 아무도 3차원 입체 공간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위로 한번만 쳐다봐도 찾을 수 있었던 것을 그 생각을 하지들 못했던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기존 사고나 인식의 테두리 내에 있을 때나 시·공간적으로 제약된 환경 하에서는 생각이 단순해지며 입체적이고 다차원적인 발상이 잘 안 된다고 한다. 특히 급박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여 보통 사람의 경우 예로서 건물 내에서 화재 발생을 당하면 순간 지능이 평소의 약 10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분석이 있었다. 지능지수가 130인 사람은 13이 된다는 이야기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큰 불이 났다. 대강당에 있던 300여명의 학생들이 혼비백산하여 뒤쪽 출구에서 엉켰다. 1층이라 바로 운동장에 뛰어내릴 수 있는 창문들을 놔두고 평소 출입하던 복도 쪽 문으로 몰린 것이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으나 혼잡한 출구 대신 창문으로 가뿐하게 피신한 학생은 단 세 명이었다. 　1987년 5월 일광절약시간제(Summer Time) 실시를 위한 사전준비를 함에 있어서 점검의 중점이 국내·외의 교통·산업·교육·역사기록 등 분야별 시간의 관리체계와 개인별 시계 조정 등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책회의에서 일순간 역 광장·터미널·공원 등 다중 시설의 시계탑과 같은 공용시계에도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 국민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편의 시설물들이 깜빡했으면 점검의 사각지대가 될 뻔 했던 것을 차질 없이 통제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입체적 사고(思考)`는 일상에서 뿐만 아니라 각종 조직 활동에 있어서 어떤 허점을 사전에 점검하고 최대한의 원활을 도모하기 위한 일종의 기본적인 기제(機制: mechanism)이다. 특히 `기획`과 `서무` 부문에 있어서는 더욱 긴요하며 모든 `행사`를 추진함에 있어서는 면밀하고 입체적인 사전 점검이 필수이다. 더욱이 공적 영역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측면의 이해관계와 입장이 있을 수 있으며, 하나의 일이 전혀 다른 사건에 관계되고 예상하지 못한 반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속성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입체적인 접근이 누구나 잘 되지는 않고 특히 급박한 사정일 때는 더욱 경직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안에 주로 공통되는 착안점에 대해 평소 기본적인 인식훈련을 해 두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제도·관행 등을 변경할 때는 항상 기득권을 고려한다` 또 `문제도 해답도 오히려 익숙하고 쉬운 곳 예컨대 이웃이나 가까운 데 있다` 그리고 웬만하면 `주변과 의논하고 자문을 구한다` 등일 것이다. 　배나무에 앉았던 까마귀가 나무 아래 뱀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말도 생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