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공무원은 노련한 부분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콘트롤이 중요한 직업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이 미흡하면 심리적인 고통으로 하루, 하루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대구 서부소방서 내당119안전센터 권준형 소방장은 "많은 소방공무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사명감 하나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주위 동료의 불운을 접하게 되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제가 아는 분들이 그런 경우에 놓여 있으면 해줄 수 있는게 없어 가슴이 답답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실제로 소방공무원 10명 중 1명 이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직무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참혹한 사건·사고 현장에 노출되면서 일반인보다 심리질환 유병률이 4~10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따른 소방공무원들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소방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소방공무원 4만 8042명 중 6567명(14%)이 심리상담이나 검사, 치료비를 신청했다. 우울증과 불면증 등으로 제대로 업무를 할 수 없어 의료기관이나 전문 상담 업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포함해 최근 5년간 46명이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1월 대구 북부소방서 대현119안전센터를 시작으로 소방공무원의 첫 발을 내딘 권 소방장은 초임시절부터 몰게 된 구급차로 인해 이 같은 소방공무원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참혹한 사건·사고에 익숙치 못한 상황에서 피투성이가 된 중상자를 수시로 이송하다보니 이에 따른 직무 스트레스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권 소방장은 "소방공무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급차를 전담하면서 솔직하 하루, 하루 출근하는게 힘들었다"며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 탓에 정신적인 고통은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바꼈고 업무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권 소방장이 소방공무원으로써 확실한 기반을 다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일분일초가 급한 환자들을 이송하면서 집중력과 순발력을 키우게 됐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노련한 업무능력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 소방장은 가장 대표적으로 대구 북구 산격동 경대교 일대서 생긴 교통사고를 손꼽았다. 다른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복귀하던 중 우연하게 목격한 교통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권 소방장을 비롯한 같이 있던 119 구급대원을 움직이게 했다. 당시만해도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되지 않았고 이에 따른 운전자의 부상은 심각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의식이 없었던 것. 권 소방장은 구급차에 환자를 급히 실어 인근 파티마병원으로 이송했고 이 같은 발빠른 응급조치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권 소방장은 "피투성이가 된 환자의 모습은 첫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며 "환자를 급히 이송해 다행스럽게 목숨을 살릴 수는 있었다. 당시에 초임때와 현재의 모습이 많이 번했구나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권 소방장의 빠른 상황판단과 대처는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대구 서구의 한 필로티 건물에서 차량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발한 권 소방장 등 소방대원들은 3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하는 기록을 세웠음에도 화재는 일부 구간에 번져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권 소방장은 화재의 시발점이 된 차량에 소방호스를 겨냥했고 이 같은 권 소방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차량을 맞고 주위로 퍼진 물줄기가 다른 곳으로 번진 불길을 잡았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화재는 모두 진압됐다. 권 소방장은 "소방수들이 소방호스로 쏘아대는 물줄기는 불길을 잡기 위한 포인트를 겨냥한 것"이라며 "여기에는 오랜 경험에서 쌓인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당시 곳곳에서 불길이 보였지만 차량을 우선적으로 진화하는데 중점을 뒀고 다행스럽게 다른 곳으로 번진 불길까지 잡히면서 화재가 일찍 진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도 소방공무원이 된지 10여년이 됐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통해 보다 더 대구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공무원으로써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