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포로인 강항(姜沆)의 충성심-①　1597년 강항(예조 좌랑)은 영광 앞 바다에서 포로로 잡혀 교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왜승 순수좌(舜首座)와 알게 되어 친밀하게 지냈으며, 강항의 영향을 받아 유학자로 개종하여 훗날 일본 주자학파의 선구자가 된 후지와라 세이가가 바로 그 사람이다. 강항은 그의 도움으로 야밤중에 탈출하여 어느 성문에 `도요토미의 조선 침략은 천인(天人)이 용서할 수 없는 폭거이므로 천지가 노하여 전년에 대지진으로 후시미죠(伏見城)가 파괴되고, 금년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막대한 피해는 신의 죄벌이고, 불계(佛戒)의 징후이다`라는 대자보를 써 붙였다.  　강항은 삼책밀주(三策密奏·전쟁에 이길 수 있는 세 가지 계책의 글)등이 기술된 `적중봉소(賊中封疏)`를 세 번이나 조국에 비밀리에 보냈으나, 첫째는 강항이 귀국 후인 1601년에 전달되었고, 둘째는 1599년 중국사신편에 보낸 것이 조정에 전달되어, 선조는 그의 충성심에 감동하였다. 세 번째는 신정남에게 의뢰했으나 전달되지 않았다.  　강항은 억류생활 중에 후지와라 세이가의 소개로 여러 성주(城主)의 원조로 대자본(大字本)인 `사서오경`과 수진본(袖珍本)인 16종의 필사본을 써주었다. 이 책은 4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제전(題箋)과 장정도 그대로인 수택본(手澤本)이 일본 내각문고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 책은 고국으로 탈출만 노리는 그로서는 선편(船便)을 얻기 위한 도로(徒勞)에 불과 했으나, 후지와라에게는 일동(日東)의 후학을 위한 송학창도(宋學唱導)의 유일의 길이었고, 일본으로서는 에도기에 유교 문화의 정립에 공헌한 역사(力寫)였던 것이다. 　1719년 에도 객관에서 아메노모리 호슈가 신유한에게 매양 여쭈어 보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오늘에야 틈을 얻었다면서 말한 대목이 있다. 일본과 조선은 신의로서 양국이 국서를 교환하며 외교 문서까지도 극히 높여 우호적 선린에 힘쓰는데, 어찌 조선 사람이 저술한 문집에는 한결 같이 일본에 대해 왜적(倭賊)이니 왜노(倭奴), 왜추(倭酋), 만추(蠻酋)라 하며 일본을 모멸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매몰차게 물었다. 그리고 분쇼노(文昭王·德川家宣 제6대 장군)는 말년에 `조선문집`을 보고 신하들에게 `어찌 조선이 우리를 모욕함이 이 지경에 달했는가` 하고 평생토록 한을 품었는데, 오늘날의 여러분은 이 뜻을 아느냐고 하면서 화를 내는 기색을 들어냈다.  　신유한은 이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문집은 분명히 임진 왜란 후에 간행된 것으로 도요토미는 우리나라의 철천지 원수로 종묘사직을 욕되게 하고 생령의 피를 흘린 것은 만고에 있지 않던 변고이니, 우리 신민은 누구나 그 놈의 고기를 갈기갈기 찢어 씹고 싶은 심정이니, 말이나 글에 노(奴)와 적(賊)을 예외 없이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진실로 마땅하다. 그리고 오늘날의 국교재개는 그 놈의 종자가 일본 땅에 없는 줄 알고 사신을 보내 국서를 전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사카에 있는 히데요시의 옛터 오사카성을 보니 원한이 뼈에 사무쳐 모골이 송연하고, 간담이 서늘해져 성낸 털이 관(冠)을 찔러 쭈뼛하게 일어서고, 그 분통을 삭이지 못한다`고 하니 아메노모리는 `그것은 지당한 말씀이다`고 하면서도 왜인이라고 하는 비칭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의 지론은 사절의 수행원들도 일본 사람을 부를 때 반드시 왜인이라고 하니 소망스럽지 못하다고 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