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계절 가을이다.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산에는 후드득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어제 같은데 이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다. 새삼 계절의 빠름에 놀란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바로 천고마비(天高馬肥)와 등화가친(燈火可親)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 그리고 서늘한 가을밤은 등불을 가까이하여 글 읽기에 좋다는 등화가친. 　과거에 비하면 우리 삶은 비약적으로 편리해졌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고 그 보다 더 빠른 KTX는 지방에서도 서울을 하루 만에 다녀오는 세상이 됐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정보화 세상의 발전은 더욱 놀라울 정도다. 돈을 보내는 은행업무도 사진을 찍고 보내는 일도 손안에서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불과 20년 전 만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더 더욱이 온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스마트 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먼 데서 사고가 일어나면 저녁 뉴스를 통해 알거나 아니면 그 다음날 신문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파악했는데 이젠 분 단위로 속보가 전해질 정도다. 그 뿐만 아니다. 생활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마트폰 검색을 이용, 해결한다. 　이러다 보니 우리 곁에서 책은 자연히 멀어진지 오래다. 조사결과 성인 남녀 중 40%가량은 일 년에 책 한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10대들의 절반도 한 달에 책 1권이상은 읽지 않는 조사결과도 있다. 어른들과 10대들 모두 책을 읽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시간부족을 꼽았다. 어른들은 직장생활과 생업에 쫓겨 여유가 없는 것이 원인 이었고 10대들은 학교수업과 학원을 다니느라 바쁜 게 이유다. 　독서 인구의 감소로 문 닫는 서점이 늘어나고 지식의 보고라 할 수 있는 백과사전은 이제 거추장스럽게 됐다. 우리가 비록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가치관을 올바르게 해주고 삶의 좌표를 단단히 해주는 것은 인터넷속의 지식이 아니라 바로 책이 아닐까. 　책을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넘기면서 얻는 지식은 액정을 터치하면서 얻는 단편적 지식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역설 중 하나는 바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깊이 있는 지식의 통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가 심화 될수록 오히려 종이 책을 더 가까이 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과 오랫동안 내면에 남을 감동은 종이책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중독성이 강하다. 손에 없으면 사람을 뭔가 불안하고 허전하게 만든다. 어른들도 그러할진대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들은 더 할 것이다. 디지털 혁명의 산물인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바꿔 놓은 것과 동시에 우리를 종이책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등화가친의 계절인 이 가을만은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책장에 꽂혀 있는 평소 읽지 못한 책을 꺼내보자. 아니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 꼭 읽고 싶었던 책 한권을 골라보는 여유를 되찾아 보자. 이 좋은 계절 말만 살찌워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마음과 정신도 살찌우는 게 도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