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접대 의례 개혁의 속사정-②　1643년 통신사(정사·윤순지:尹順之)의 화원으로 수행한 김명국(金命國)이 일본에 갔을 때 돈 많은 한 왜인이 별채를 지어 벽에 비단을 붙여 벽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김명국은 술부터 찾고는 붓을 잡고 한쪽 손으로 금가루 즙의 주발을 들어 한 입 가득 머금고는 사면에 뿜어 뱉어 그릇을 비웠다. 그러자 집 주인은 화를 내 칼을 뽑아 죽일 듯이 대든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껄껄 웃으며 붓을 잡고 빗질하듯 쓸고 행주로 닦듯이 점을 찍고 선을 이으니, 울창한 산수가 되고 혹은 인물이 되며 깊고 얕음과 짙고 옅음의 설색(設色)이 손놀림에 따라 천연스럽게 채색이 뛰어나고, 기발한 착상으로 필세(筆勢)가 힘차게 요동치며 잠시도 머무름 없이 용트림하며 약동하는 모습이, 마치 귀신의 도움으로 된 것 같이 일필휘지로 신들린 듯 그려주었다. 　이 신묘한 기교에 놀란 왜인은 기뻐서 머리를 조아려 몇 번이고 사과하며 사례를 하였다. 이내 김명국의 그림 평판이 일본 천지에 알려져 그림 구경꾼이 구름 같이 모여 들었다. 주인은 이 별채를 잘 관리하여 입장료를 받고 구경 시켰으며, 자손들은 영구보존을 위해 기름막으로 덮었다가 조선 사신이 가면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사실 김명국의 그림은 빠르게 그리고 느리게 멈췄다 다시 소용돌이 치다가 잠잠해진다. 손끝에서 살아나는 광풍의 요지경이 자연의 풍광이 되어 살아난다. 짙푸른 소나무와 잡초, 이름 모를 들꽃들 그 위에 몽롱한 색이 얹히면 꿈은 그 속에 가리워져 꿈틀댄다. 그 넓은 화폭은 또 다시 산이 솟아나고 기암절벽에 시원한 폭포와 만발한 꽃들로 마음은 어느덧 호연지기를 불러온다. 　1748년 통신사(정사·홍계희:洪啓禧)의 화원으로 최북(崔北·호생관:毫生館)이 수행했다.  　어느 지체높은 사람이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최북을 협박했다. 최북은 남이 나를 해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해치겠다고 스스로 한 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고 한다. 최북은 피카소의 말처럼 "자연은 강간당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작품 세계의 내적 동기를 예술에 있어서나 실제 삶에 있어서나 창조를 위해 지금의 것은 부정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보이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혼이 깃든 그림을 그렸다. 최북이 일본에 갈 때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성호 이익(李瀷)이 그의 일본행 송별시를 지어 주었다.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옹졸하고 게으른 나는 평생 장관(壯觀)을 못 봤건만 / 그대는 바다 건너 하늘 노닐게 되었구나 / 해 뜨는 동쪽에는 진짜 해가 있을지니 / 그것을 그려 가져와 내게도 보여다오  　호생관은 붓 한 자루로 먹고 산다는 뜻이며, 그의 죽음은 어느 겨울 날 술에 취해 성벽 아래 잠들었는데 폭설이 내려 얼어 죽었다. 최북의 북(北)자는 둘로 쪼개면 칠칠(七七)을 자(字)로 삼았다. 그는 스스로 송곳으로 눈을 찌른 기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