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에서 물컹물컹 피와 땀이 범벅이 돼 아랫도리를 타고 내린다. 이상하게도 아픔은 없다. 밤하늘을 처다 본다. 십자성 별빛아래 유난히도 큰 달이 밝음을 더하고 있다. 그 밝음이 어머니의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로 동생 철이와 순이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유난히도 눈이 큰 옥이의 얼굴이 되고 있다. 　타탕 타탕 타-땅, 드리운 야자수 큰 그림자가 이들의 얼굴을 지우고 있다. 허리가 꺾어지고 가슴에 무언가 모를 따끔함이 파고든다. 손을 넣어 샘물 같이 솟아나는 피를 억누르고 일어서려고 허우적 거려보지만 그대로 허리가 꺾이고 힘없이 앞으로 쓰러지면서 앞서 가다가 쓰러진 김 병장(兵長)의 발목을 잡아 당겨보지만 반응이 없다. 우리는 20대 꽃다운 청춘에 국가의 부름을 받아 1965년 파병을 시작으로 1973년까지 열사의 나라 월남(베트남)에서 8년 8개월 동안 총 32만5천여명이 파병하여 5,099명이 전사하고 부상자 1만1,232명과 고엽제환자 10여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귀국한 파병용사들이다. 현재 평균 나이 72세, 생존자 약 20만여명이 얼룩무늬 번쩍이며 귀신 잡던 기백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당시 대한민국 국민 1인당 GNP 76불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못살던 초 빈국의 나라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생계를 영위하면서, 일본에 36년간 핏박과 억압을 당한 배상보상금 3억불과 차관 5억불을 빌려와서 총 8억불의 자금으로 지금의 포스코(포항제철)를 탄생시켰다. 김 병장! 김 병장! 김 병장의 발목을 잡은 손에 마지막 힘을 주어 흔들어 보지만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한 김 병장은 5,098째의 전사자가 돼 나보다 먼저 고국의 하늘을 향해 연기 같이 사라졌다. "우리 제대하면 월남 전쟁을 추억담으로 이야기 하면서 꽃 같은 우정을 영원히 변치말자"고 다짐한 전우가 오늘 아침만 해도 "이 번 전투가 끝나면 귀국선을 타고 승리가 부르면서 고향가자"고 말하던 김 병장의 천진난만한 웃음 짓던 얼굴이 가물거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월남전에 참전한 목적은 미국의 안보 동맹국으로, 아시아 여러 국가들이 공산당에게 도미노로 무너지지 않게 "자유 와 평화"를 지키고, 6.25한국전쟁 때 미국 등 우방 16개국이 우리를 지원한 은혜에 보답하며,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참전하였으며, UN(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참전하여, 우리의 목숨을 기꺼이 "나의 조국 대한민국과 자유와 평화"를 위해 바치고자 파병한 것이다.  월남특수로 외화를 벌어온 금액은 총67억불(당시 경부고속도로 총공사비 1억4,700만불)은 경부고속도로 45개를 건설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자금이다. 이 돈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일으킨 원동력이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지금은 GNP 3만불 시대에 풍요롭게 살고 있다. 월남파병을 위해 한국과 미국 간에 한국군의 무기현대화, 차관 및 항만, 비행장, 도로, 하역, 교량, 건축(당시 우리기술로는 5층 아파트 건축도 불가), 토목, 프렌트, 탄약공장, M16무기공장, 등 다양한 기술제공 무상 등 14개 항으로 맺어진 `브라운 각서`가 탄생했다. `브라운 각서`에서 얻은 기술이 중동으로 세계로 뻗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것이다, M16소총을 잡은 손이 스스로 풀려 손목이 꺾이면서 어머니와 책가방을 사주기로 약속한 철이와 순이 그리고 아버지의 통곡(慟哭)이 보인다. 제대하면 결혼하여 한평생을 살자고 약속한 옥이가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내 육신(肉身)을 베트콩의 노획물로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수류탄의 핀을 뽑으려하지만 힘이 없다. 옥이가 또 손짓한다. 옥이의 손결 따라 겨우 핀을 뽑았다. 내가 5099번째의 마지막 전사자로 전쟁이 끝나기를-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경제와 안보를 살리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 영웅(英雄)들의 이그러진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