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어머니는 작심한 듯 곡기를 끊은 채열흘째 되던 날 자식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말씀 하셨다　"소주 한 잔만 따라 다오"　빈속에 소주는 독약과 마찬가지당신의 질긴 목숨을 그렇게 갈무리 하려는모진 결단이었다　"너희들도 한 잔씩 따라 마시거라"　우리는 흐느끼며 서로의 술잔을 들이켰다어머니는 그렇게 목숨을 삼키셨다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이별주였다                                            - 김선태　 시속의 어머니는 곡기를 끊어신지 열흘째 되는 날 자식들을 불러 놓고 소주 한잔씩을 나누어 마시고 이승을 마지막 하직 하신다 세상을 떠나는 모습치곤 무척 특이한 풍경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주`가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이별주`라니! 시적 울림을 노린 시인의 역설적 표현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많은 얘기가 함축된 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존재다. 우리의 삶이 쓸쓸하듯이, 누가 말했든가 삶이 아름다운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그렇다 인간의 한번뿐인 유한성이 우리 삶을 간절하고 더욱 속절없이 만든다. 팔순 어머니가 유언처럼 내뱉는 말 "소주 한 잔만 따라다오" 빈속에 마시는 소주가 독약인 줄을 알면서도 선택한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참으로 모진 결단이다. "너희들도 한 잔씩 따라 마시거라" 죽음을 눈앞에 둔 노모의 피를 토할 것 같은 이 말이 더 가슴을 짠하게 한다, 자식들은 흐느끼며 서로의 술잔을 들이키고, `어머니는 그렇게 목숨을 삼키셨다` 술을 마시듯, `목숨을 삼켰다`는 표현도 절묘하다.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묘비명이 생각난다. `우물쭈물 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의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전주곡만 허둥대다가 떠난다, 필자도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은, 끔찍한 나이가 되었다, 나는 과연 그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생각하기도 싫고 참담하고 막막해진다. 삶을 살다보면 비극적 균열이 생긴다. 그 갈라진 비극적 틈새 사이로 놀랍게도 붉은 피가 스며 나온다. 그러나 어쩌랴, 절망을 견디고 사랑하며 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 가야한다. 세상의 모든 시에는 이러한 삶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사랑에 대한 아픈 고백의 흔적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