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가슴이 뛴다아가야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 먹는고추장도 되고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안도현　 가을이다. 가을 햇볕이 눈이 시리게 투명하다, 특히 경주의 가을은 아름답다, 가마솥 같았던 금년 더위도 이제는 한풀 꺾였다. 이 시는 요즘 시골 집 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쨍쨍한 가을 햇살아래 마당에 고추를 말리는 풍경을 보면서 삶과 사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는 것이 이 시의 주제다. 시인은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 갈 때면 가슴이 뛴다"고 한다. 평범한 고추 말리는 풍경에서 왜 시인은 가슴이 뛴다고 했을까? 때 묻지 않은 동심 때문일까? 고추의 매운맛을 떠 올리며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거기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생도 고추처럼 맵게(정직하게!) 살아야지 흐리멍텅하게 살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나는 삶을 땡초처럼 맵고, 정직하게 살고 있는가?) 삶은 땡초처럼 맵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 먹는 고추장도 되고" 매우면 그 속을 달래주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는 것이다. 매운 맛을 사라지게 하는 찬물(정직함)의 그 빛나는 사랑! 아, 땡초맛 하나에서 빛나는 사랑의 의미까지, 시의 이미지를 확장시키는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비유나 상징이 아니다. 사소한 삶의 기미에서 발견하는 좋은 시 창작의 비결을 본다. 문학은 사람과 삶과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다. 우리는 한편의 시나 소설이나 수필에서 그 작가만의 사람과 삶과 세상에 대한 개성적인 이야기를 읽는다. 한편의 시에서 사람과 삶과 세상의 진실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시는 좋은 시이다. 정직한 내면을, 인생의 새 의미를, 세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적 성찰이 담긴 시를 나는 좋아 한다. 안도현의 `가을 햇볕`은 짧고 담백한 시지만, 편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서정성도 담긴 감정의 절제가 잘 된 아름다운 시다. 이 가을에는 아무쪼록 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당신의 오늘도 나의 내일도, 깊고 풍요로운 경주의 맑은 가을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