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고종은 최씨 무신권력 앞에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강화도로 숨어들어 온지 21년, 참지정사 유승단과 김세충의 모습이 꿈에 나타난다. 목숨을 부지하고자 유승단과 김세충의 말을 듣지 못하였음을, 이 나라 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자책감에 울분을 토하면서 마지막 승부수를  띠우기로 결심했다.  　자금성에 앉아 있는 몽골 5대 칸 쿠빌라이는 고려라는 보잘 것 없는 나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에 피해 있는 고려 원종이 대몽골 황제와 사돈을 맺자면서 대제국 황제를 꼼짝  달살 못하게 만들고 있다. 　쿠빌라이는 자신을 칸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원종이기 때문이다. 칸은 어쩔 수 없이 결국 4년 뒤에 숨겨둔 딸을 원종의 아들 세자 왕식에게 시집을 보냈다(고려사 세조 원종 11년 1270년 2월~ 1274년 5월) 　강대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오직 국민만을 생각할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이것도 현명한 지도자의 이야기지 현명하지 못한 지도자는 나라도 잃고, 백성도 잃고, 자신마저 잃어버린다. 　북방 기마민족으로 거칠고 사나운 몽골이 고려국토를 초토화시키면서 개경으로 진격하자 1232년 6월 당시 무신정권 실권자인 최우는 허수아비 국왕과 대신을 모아놓고 강화도 천도를 결정한다. 　정2품 참지정사 유승단이 "인구 10만명인 수도를 버리고 섬에 숨어 구차하게 세월을 연장하면서 백성과 장정을 칼과 화살에 죽게 만들고 노인과 아이들을 노예와 포로가 되게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장계(長計)가 아니다"고 반발했고, 특수부대 별초(別抄) 지유(指諭) 부대장 김세충(金世沖)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군사와 양식이 풍족하니 천도는 불가하다"고 외치자 최우는 김세충의 목을 배고 그날로 강화도로 천도했다(고려사절요1232년 고종19년 6월). 　강화도 섬으로 숨은지 23년이 흐른 1254년 한 해 동안 유승단 예언대로 남녀 20만680여명이 끌려갔고, 살육당한 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몽고군이 지나간 마을은 잿더미로 변했다(고려사절요 1254년 고종 41년 12월). 개경에서 죽은 아버지 시신을 찾던 문신 박항은 아비를 찾지 못해 산을 이룬 시체더미를 뒤져 아비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 300여 명을 묻어주었다(고려사절요 박항 열전).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여론은 화친(和親), 다시 말해 항복으로 기울고 있었다. 고종은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충신 몇 명과 은밀한 합의하에 나라도 회복하고 민생안정 차원에서 맏아들인 세자 왕식에게 화친 요청 문서를 몽골 왕에게 전달토록하면서 몽골공주와의 결혼동맹을 맺을 것을 당부했다. 세자가 국경을 넘을 때 몽골 칸 현종이 죽고 셋째 동생이 칸이 돼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왕식은 아락부카 칸을 찾지 않고 둘째 아들 쿠빌라이를 배알하고 화친을 전달하자 쿠빌라이는 칸을 찾지 않고 자기를 찾아온 것에 민심이 실리자 힘을 얻어 5대 칸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10년 뒤 왕이 된 세자 원종이 몽골 새 수도 연도(북경)로 가서 결혼동맹을 재요청했다. 무신정권이 속을 썩이는 국내 정치적 권위를 타파하고, 칸의 사위국으로 고려를 격상시키겠다는 전략이다. 1271년 10월 세조 칸은 고민 끝에 쿠툴룩켈미시라는 열한살짜리와 혼인을 한 충렬왕과 제국공주다, 고려를 통치한 다루가치도 세조구제(世祖舊制)도 미미해졌다. 　역사는 흐른다. 전시 수도 강화도서 나라를 보존시켰던 고종이 잠들어 있고, 그 아들 원종은 개경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원종의 아내 무덤 가릉은 강화에 있다. 충렬왕과 제국공주가 있었기에 국민과 국가가 겪은 고통은 적었을 것이다, 　몽골이 고려를 멸망시킨 것 아니었다. 국가를 보존하고 왕권을 확립하지 못한 대다 나태하고 부패해진 관리와 국가기강의 해이 탓일 것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항상 강대국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부패한 국가는 신흥 권력 집단인 신진 사대부에 무너지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