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愛酒家)는 술을 좋아한다. 왜 술이 좋을까? 아마도 술을 마실 때의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즐거움을 `낙(樂) `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애주가들이 건강상의 문제로 잠시 술 마시기를 중단하면, 늘 하는 말, `낙이 없어`라고 한다. 　낙(樂)의 반대말은 `고(苦)`이다. 그런데 문제는 `낙`을 취하고자 음주를 했는데, 마신 술이 과하면 이틋날 위장에 통증을 느끼거나 두통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낙을 취했지만 고가 따라 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경(經)은 고락(苦樂)이 둘이 아니라 하였으며, 고(苦)를 피하고자 하면 낙(樂)도 버려야 하고, 낙을 취하면 고도 피할 길이 없기에, 양쪽 모두를 여의어야 비로소 피안(彼岸)에 이를 것이라 하였다. 　사람의 뇌가 좌반구(左半球) 우반구(右半球) 두 개의 뇌로 나누어져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감정 속에는 늘 호불호(好不好)가 있게 마련인데, 좋은 일이 나쁜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따라 붙는 경우가 많으며,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있듯이 나쁜 일이 도리어 좋은 일을 몰고 오기도 한다. 세상사가 이러하니 좋은 일이 있다하여 희희낙락(喜喜樂樂)할 것도 없고, 나쁜 일이 있다하여 절망(絶望)할 까닭도 없다. 여름이 오면 여름을 받아들이고, 겨울이 오면 겨울을 받아들이면 그만이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이외로 간단하다. 행복에 대한 이해의 부족, 그러니까 행복이 불행의 반대말 같지만, 고와 낙이 한 덩어리인 것처럼 행복 또한 불행과 한 몸이라, 불행을 이기면 행복이 될 것이나 행복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곧 불행이 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있듯이, 좀 부족함이 넘침보다 나쁜 것이 아니며, 풍족함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큰 불행을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겨볼 일이다. 배고픔이 허기를 만들지만 허기만한 미각(味覺)도 없고, 미식(美食)과 과식(過食)이 오히려 만병(萬病)의 원인이라. 재물이 아무리 풍족하고 지위가 한없이 높아도 그것만으로 행복을 얻기가 어려운데 부러울 것은 무엇이며,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 하였으니 뛰어난 외모조차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사나 마나한 인생을, 하나 마나한 일을 하면서, 있으나 마나하게 있다가, 가나 마나한 곳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리 가릴 것이 없으련만, 태어난 대로, 생긴 대로, 주어진 대로 거저 그럭저럭 한 세상 살다 가면 그뿐인데, 가질만한 것은 다 가지고도 만족을 모르고, 허구한날 앙앙불락(怏怏不樂)이라. 　내가 아주 어릴 때는 사계절(四季節)을 모르더니, 사계절을 구분하는 의식(意識)이 생기자, 봄의 화창함이 좋을 때도 있었고, 뜨거운 여름이 좋을 때도 있었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좋을 때도 있었고, 백설이 뒤덮힌 겨울이 좋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봄의 꽃가루 알러지가 싫고, 여름의 무더위가 짜증나며, 가을의 스산함이 싫고, 겨울의 동장군(冬將軍)이 무섭기도 하다. 자연은 본래 고락(苦樂)이 없는 것인데, 단지 사람이 고(苦)를 취하기도 하고 낙(樂)을 취하기도 할 뿐이라는 말이다. 　오온(五蘊)이 본래 공(空)이라 하였든가. 이제 모든 것이 명료해 졌으니, 마시는 즐거움과 깰 때의 고를 함께 여의기 위해 금주(禁酒)하고 해탈(解脫)하려 하지만, 반대로 고락(苦樂)을 함께 수용하는 것 또한 열반(涅槃)으로 가는 또 다른 지름길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