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관광도시가 되려면 밤이 아름다운 도시가 돼야 한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가능하면 밤 비행기를 타고 싶어 한다. 왜냐면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라스베이거스의 휘황찬란한 일루미네이션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 도시는 세계적인 위락도시로 정평이 나 있지만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조명 덕에 한 가지 콘텐츠를 덤으로 얻고 있는 셈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최첨단 조명을 이용해 도시를 화려하게 포장하고 있다. 그 도시를 찾는 여행자들은 화려한 조명에 취해 깊은 밤을 즐긴다. 　도시의 야경으로 유명한 도시 중 홍콩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영국인들이 더위를 피해 거주지로 조 성한 빅토리아 피크에 오르면 홍콩의 마천루들이 발산하는 조명으로 빼곡한 홍콩의 도심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홍콩 정부는 이곳으로 오르는 트램을 설치해 홍콩을 방문한 여행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보장했다. 트램을 타기 위해 늘어선 여행자들은 홍콩에 적지 않은 달러를 뿌린다. 　홍콩에서 저녁 8시면 어김없이 시작하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홍콩섬의 고층빌딩을 이용한 조명쇼 중 세계 최강이다. 첨단 레이저쇼에 기존 건물이 지닌 조명까지 더해져 여행자들은 약 15분간 펼쳐지는 쇼에 넋을 빼앗긴다. 홍콩이 세계 최고 수준의 관광도시가 된 데에는 그만큼 깊은 고민과 노력이 곁들여진 결과다.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태국의 방콕을 빼면 서운하다. 도심에서 걸어다닐 때는 야경이 그리 아름다운지 모르지만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도시를 조망하며 방콕이 이처럼 밤이 아름다운 도시였는지 몰랐던 것이 후회된다. 방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바이욕스카이 호텔이나 르부아, 반얀트리 호텔의 루프탑 카페에 가면 밤마다 여행자들이 북적인다. 고가도로가 많은 방콕에 늘어선 차량이 뿜어내는 불빛과 도시의 건물들이 발하는 조명은 마치 보석을 뿌려놓은 것 같은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낸다. 교통지옥인 방콕이 밤이 되면 정체되는 차량의 불빛으로 또 하나의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를 체험한다. 　이들 도시와 경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경주는 대도시가 아니며 건물의 조명을 뽐낼만한 형편이 안 된다. 마치 유럽의 어느 시골마을처럼 그저 고요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천천히 걸어서 다니는 경주의 시가지는 대도시가 갖지 못하는 낭만이 가득한 도시다.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 특히 반월성과 동궁과 월지의 그윽한 조명은 경주의 밤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물론 원도심의 상가들이 비교적 이른 밤에 문을 닫아버려 여행자들이 깊은 밤에 즐길거리가 없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주의 관광산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고 원도심 도시재생이 이뤄지면 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경주의 그렇게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야경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옥의 티가 하나 있다. 바로 첨성대의 야간 조명이다. 몇 년 전 연말이 되면 첨성대로 향하는 길과 첨성대 인근 큰 나무에 트리 조명을 달아 타지역에서 오는 여행자들의 원성을 사다가 지속적인 민원을 받아들여 트리 조명을 최소화하고 이제는 거의 없앴다. 잘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 첨성대를 비추는 조명이 이상해졌다. 처음에는 서너 가지 알록달록한 조명이 번갈아 바뀌면서 마치 중국 시골도시의 주점 조명처럼 해 뒀다가 이 문제에 대한 시민의 항의가 있자 하나의 조명으로 고정시키긴 했다. 하지만 그 조명이 국보를 비추는 조명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를 비추는 야간조명은 지극히 단순해야 하고 점잖아야 한다. 문화재의 품격을 최대한 높이고 고급스럽게 강조해야 하는 조명을 고르는 일은 매우 까다롭기는 하다. 그러나 인근의 반월성 외곽을 두른 조명과 동궁과 월지를 치장하는 조명은 성공했는데 유독 첨성대의 조명이 저급하고 밝은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주낙영 경주시장이 밤에 첨성대를 가봐야 한다. 그 부조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시정하도록 지시해야 한다. 밤이 아름다운 도시 경주가 되기 위해 세심하게 정성을 들이다가 단 하나의 조명 실수로 인상을 흐리게 하는 점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방치한 것은 담당자들의 무성의라고 봐도 무방하다. 주 시장이 직접 챙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