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은 그의 아내가 늘어놓은 불평에서 비롯되었다. 아내는 누구보다 실리적인 사람이었고 노후 걱정이 많았는데, 이번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보험료는 더 오래 내며 연금은 늦게 받는다는 법안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생각해보오. 불가피한 일이잖소. 급격한 저출산과 고령화 시대에 연금을 낼 사람은 부족하고 탈 사람은 많으니 무슨 방안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모름지기 명예로운 국민은 소외계층을 위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덧붙이자 아내는 마치 남편이 복지부 장관이나 되는 듯이 그를 몰아세웠다. 안달복달하는 아내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그는 아내에게 돈, 돈, 너무 밝히지 마시오, 하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내는 자신을 속물 취급한다며 펄펄 뛰었다. 그는 공중의 나는 새도 먹여주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하며 성경 구절을 읊었다. 어찌 되든 살게 되어 있으니 걱정 말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가 대꾸했다. 흥, 어디 숨겨둔 유산이라도 있어요? 아내가 시골 전답이나마 유산을 받은 지인을 부러워하며 시가의 변변찮은 경제력을 들먹이자 그는 아주 기분이 상해버렸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숨겨둔 유산이라, 있다면 있지. 좀 기다리오. 그는 점잖게 말하고는 책 두 권을 가져와 아내에게 주었다.  　이 두 권의 책 읽기를 마칠 때쯤, 당신도 유산 한 몫을 받을 것이오. 그는 꼬장꼬장한 자세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젊은 날 직장을 팽개치고 나와 인문학 강의로 근근이 살아왔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남편을 아내는 존경심을 가지고 만혼에 응했는데, 오늘 저녁 아내는 그녀답지 않아 보였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위대한 유산 너머`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위대한 유산`은 있어도 `위대한 유산 너머`라는 제목의 책은 없습니다.  이것은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 감동한 내가 지어낸 감상문 제목입니다.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겨루는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찰스 디킨스를 모른다고요? `크리스마스 캐럴`몰라요? 하면 상대는 고개를 갸웃하지요.  　단어 자체는 실로 낯익고 친숙하기까지 하니 알듯 말듯, 결국 그 작품을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교과서에 실렸던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를 들먹이면 아하, 하고 반가운 반응을 보여요. `위대한 유산`은 바로 그 디킨스의 후기작이지요. `일 년 내내`라는 주간 잡지의 연재소설답게 대중적이고 예술적이며 가장 보편적이라는 평을 받은 소설이지요.  　그런데 `너머`는 무슨 의미일까요. 나의 아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떤 유산을 받게 될까요. 저는 두근거리기까지 합니다.  　핍이라는 주인공 소년이 우연히 유산을 받는 행운을 얻음으로써 소박하고 아름답게 살았던 지난날을 잃어버리고, 신분 상승 욕망에 전전긍긍하는 청년으로 변모하지요. 가장 선량하고 진실한 사람으로서 핍과 서로 사랑했던 사람은 매부인 대장장이 조입니다. 핍은 조의 신분을 비천하게 여기며 사교모임에서 미숙한 조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며 배은망덕한 인간이 되어갔습니다.  　정기적으로 받은 유산 금액으로 모자랄 만치 사치와 낭비를 일삼아 큰 빚을 지게 되었지요. 핍은 누가 자신에게 유산을 주는지 알지 못한 채 나머지 유산 받기를 꿈꿉니다. 핍은 어릴 적에 교회 묘지 근처의 습지에서 도망친 죄수를 만나 빵과 술을 가져다주었는데, 유형지에서 돌아온 그 죄수가 바로 핍에게 지금까지 유산을 주어온 사람임을 밝힙니다.  　핍을 아들처럼 생각하는 죄수는 쫓기고, 핍은 죄수를 숨겨줍니다. 영국 밖으로 탈출시키는 도중에 죄수는 체포되고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범죄자의 모든 재산은 국가에 귀속되므로 유산의 행운은 사라져버리고 핍은 부채로 구속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충격을 받은 핍은 열병을 앓습니다. 매부 조가 핍의 부채를 갚아주고 극진히 간호한 결과 핍은 회복되며, 자기 각성에 이르게 되고,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진실하고 고결한 조의 인간적 사랑이 바로 위대한 유산 너머의 진정한 생의 유산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내 아내가 유산 너머의 깨달음으로, 위대한 유산을 받게 되기를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결국 우리의 삶에 도래하는 공포는, 줄어드는 연금액이 아니며, 노후 생활 대책금도 아닌, 오직 우리 안에 도사린 허망한 욕심입니다. 내일쯤이면 아내가 소설을 다 읽고, 예전처럼 존경하는 눈빛으로 내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정말 내게 위대한 유산을 선물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