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당시는 군사정권 시절이고 `보안`이 `소통`보다 더 강조되었다. 정부종합청사의 당직근무는 청사 입주기관 당직자들이 합동당직실에 모여 교대로 순찰을 하고 가수면(假睡眠) 휴식을 취하는 등 꽤 엄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이 합동당직실을 비롯한 정부 당직 전체를 총 지휘하는 당직 총사령은 평일 야간에는 중앙부처 국장급이, 주말이나 연휴 때에는 그 위의 직급인 실장급(차관보급)이 맡았으며, 실무자들 간에는 야간 대통령이라고도 불렸다. 　총사령에게는 과장급 및 사무관급 보좌관 각 1명씩과 순찰 차량에 운전자 1명이 배치되었다. 가끔 대통령도 불시에 들러 상황보고를 받기도 했기 때문에 총사령 팀은 항상 긴장 속에 근무를 해야 했다.　한번은 주말 야간에 총사령 사무관 보좌관으로 당직근무를 하면서 여느 때처럼 지정된 사무실들의 내부순찰을 돌았다.  　내부순찰은 각 사무실을 돌며 서류·자료 등의 안전관리, 책상·캐비닛 등의 시건(施鍵)장치 확인 및 선풍기·전열기 등의 단속 등 비치된 순찰일지의 항목별 보안 점검을 실시하고 서명하는 것이다. 　순찰하다 보니 주말·휴일 당직의 경우 전체 사무실에 대한 중복점검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의 최종퇴근 후 출입조차 없는 사무실을 반복해서 살피는 것은 낭비이므로, 내부순찰은 첫 번 당직자만 하고 후번부터는 휴일 특별 근무를 한 사무실외에는 필요가 없어 보였다.  　과장 보좌관과 총사령에게 보고하자 행정 능률성 차원의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여 당직보고서 건의 란에 약 한 쪽 분량으로 정리해 제안했다.  　월요일이 되자 당직업무를 총괄하는 청사관리소 제1부장이 호출했다. 그는 헌병장교 출신으로 성벽이 유별난 간부였다. 그로부터 좋은 소리 듣기는 기대하지 않았으나 `보안`의 개념조차 모른다고 혼이 날 줄은 몰랐다. "새파란 놈이 보안을 뭐 안다고 이따위 제안을 하느냐, 사람 출입이 없더라도 항상 살피는 것이 보안이라며, 고시 출신이 저러니 한심하다" 고 소리쳤다. 　얼핏 일리가 있는 듯 했으나 반발심이 생겨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맘에 안 들면 채택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바쁜데 불러서 소리치고 난리야, 군발이 출신은 할 수 없네!" 　2007년 경 워싱턴(D.C.)에 있을 때 연방 국토안보부(DHS: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산하 연방 재난관리청(FEMA: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에 파견 중이던 구 소방방재청 K과장과 함께 갔다. 방문객 안내실에서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K과장은 다른 기관도 아닌 그 재난관리청의 철저한 신원조사를 거쳐 발급된 직원 신분증이, 필자는 외교관 신분증이 있었다. 또 미리 문서로 방문 예약된 사실이 확인되어 각자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받았다. 거기에다 내부 직원의 동반 안내(escort)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보안`의 울타리가 첩첩인 것처럼 느껴졌다. 　약속된 사무실에 전화를 하자 한 직원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나왔다. 그가 우리 두 사람을 안내해 검색대를 통과하려 하자 그도 출입이 저지되었다. 본인 출입증을 사무실에 두고 나온 것이었다.  　뻔히 아는 직원이 1분전에 나왔다가 바로 되돌아가는 순간 출입증이 없어 저지된 것이다. 그 직원도 전화를 해서 또 다른 직원이 나와 세 사람을 데리고 들어갔다.    　미국 관공서의 보안 관리는 철저하고 특히 9.11 이후 생긴 국토안보부와 같은 안전관련 부서는 더 엄격하다. 다만 백악관은 삼엄한 보안통제를 하면서도 동시에 시민 개방 프로그램은 적극 운영하고 있다.  　보안이라는 것은 그 옛날 군 헌병 출신 부장의 말처럼 항상 반복해서 살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국민 접근성 가치와의 균형점에서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한국 정부청사도 종래 신분증을 제시하고 방문증만 받으면 자유 출입을 했으나 외부인 잠입 추락사, 공직 수험생 침입사건 등을 계기로 이제는 방문증 외에 내부직원의 에스코트도 받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시민소통 차원에서 대부분 상당히 출입이 자유롭다. U광역시 옥상은 한 때 시민의 휴게소이자 흡연 장소가 된 적도 있었다. 　`보안`은 의식도 중요하나 먼저 물리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소통`은 철문을 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문, 인식의 문, 자세의 문을 열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