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에는 괴테의 생가가 있다. 뢰머 광장이라는 외진 곳에 위치한 이 생가는 4층짜리 벽돌집으로 특별하게 아름답거나 관광지로 눈에 띌만한 요건을 갖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한 여행자들은 대부분 이 집을 찾아간다. 프랑크푸르트가 독일의 유명한 관광도시는 아니지만 국제선 항공노선이 가장 많은 허브공항 도시라 유럽 여행의 경유지로 많이 거치는 도시다. 　이 생가는 괴테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괴테는 이 집의 3층 왼쪽의 `시인의 방`이라고 불리는 방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를 썼다. 사람들은 고전 소설의 산실에 직접 방문해 문화적 체험을 하고 젊은 시절 읽었던 명작이 생산된 현장의 감동을 맛본다. 　인도 콜카타에는 타고르 하우스가 있다. 인도의 문호 타고르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은 특수 기능의 인문대학이 자리잡고 있고 타고르의 유품들이 전시된 박물관도 세워졌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을 무렵 수도였던 콜카타는 다양한 유적들이 산재해 있지만 인도에 대해 관심이 깊은 여행자들은 길을 물어물어 타고르 하우스를 찾아간다. 　타고르 하우스 역시 별로 볼만한 것은 없다. 재래시장을 지나 아직도 인력거가 운행하는 혼란스러운 올드타운을 지나면 골목길에 잇댄 대저택을 찾는 여행자들은 하루에도 수백명에 이른다. 그것도 대부분 서양인들이다. 이들은 동양의 대문호가 나서 공부하고 자란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인도라는 동양의 문화적 거대국가의 정신적 뿌리를 더듬는다. 　이뿐만 아니다. 세계 곳곳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인들의 생가를 잘 복원해 놓고 기념관과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행자들은 그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한 국가의 정신문화를 주도했던 문호의 숨결을 느끼는 일정을 꼭 포함한다. 　문학은 문자언어를 통해 그 시대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문학을 통해 한 국가의 정신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고 그것이 역사나 철학의 상위개념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의 위상은 높고 그의 작품을 통해 당대의 문화상을 읽는다. 그리고 그런 문인의 업적이 한 국가의 문화적 품격이 된다. 　경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가문학인 향가가 발상한 도시다. 아직 향가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우리 고대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해도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경주는 아직 그렇게 소중한 우리 문학의 뿌리인 향가문학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향가문학을 토대로 한 학술행사는 가뭄에 콩 나듯이 뜸하고 향가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의 생산도 희귀하다. 　고대문학에 대한 무관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현대문학의 두 거두인 박목월, 김동리의 고향인 경주가 이들의 문학적 위상을 높이 기리는데 게으르다는 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동리목월 문학관이 있고 거기에서 문인 양성과 문학교육, 동리목월 문학상 등의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것은 문학인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시민 모두가 우리 현대문학을 이끌었던 두 인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할만한 노력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며칠 전 건천읍 모량리에 있는 박목월 생가를 찾은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현대 순수 시문학의 대가가 태어났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경주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생가 복원을 위해 예산을 얼마 들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수십억원이 들었든 수백억원이 들었든 생가 복원의 재화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정신문화의 현장이 방치되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잡풀이 우거졌고 정갈한 생가의 마당에는 어느 누구의 발자국도 찍혀 있지 않았다. 1년에 몇 차례의 행사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텅 빈 생가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존재하는가. 생가로 진입하는 도로는 좁고 정비가 되지 않아 일반인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현 실정을 경주시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동리의 생가는 아직 복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생가터의 집주인이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한다는 것이 경주시의 설명이지만 더이상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금액으로 환산하기 힘든 정신문화 유산을 뒤로 밀쳐두고 눈앞의 섭생에만 매달리는 행정은 마치 산란기의 숭어처럼 맹목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복원된 목월생가를 활성화시키고 관광자원화 할 궁리부터 서둘러야 문화도시 경주의 면목을 살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