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른들이 "살다보면 누구나 송사(訟事)에 휘말릴 수가 있다. 송사 없이 사는 것도 복이다" 라고 한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세상에 공·사적으로 분쟁이 있을 수 있고 재판에까지 가는 일도 허다하다. 　어떤 유형의 소송이든 그 당사자는 피가 마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지기 위한 소송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동원 가능한 자료·논리·조언 등 물적·인적 지원 체계를 모두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여하한 형태이더라도 감성적인 접근은 결코 도움 되지 않는다.  　특히 변호사가 있는 경우 자료·논리 등에 대해 그와 의논 없이 본인만의 판단으로 `배제`해버리는 것은 금물이다. 시시하거나 별 도움이 안 되어 보이더라도 꼭 전문가와 상의하는 자세가 긴요하다.  　전문가에게는 전문가의 눈이 있다. 별 거 아닌 것이 의외의 위력을 발휘하는 수가 있다. `법의 본래목적`을 소명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 나의 항변이 수용되지 않더라도 ㅇㅇ만은 ㅇㅇ이다 즉 `예비적 항변`(豫備的抗辯)도 필요하다.　재판은 법을 어떤 사실에 적용하기 위해 그 법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판사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건전한 상식에 입각, 당사자 주장 중 옳게 보이는 편을 손들어주는 직업일 뿐이다. 　그래서 우선 법규의 문리(文理) 해석이지만 그 법을 만들게 된 목적을 살피는 즉 목적론적(目的論的) 해석도 필요하므로 입법자의 본래 의도를 규명하여 제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공직 재직 중 업무 관련 소송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건이 있다. 공무원연금법 제 50조(공사화 관련 퇴직급여의 연계)의 적용 문제로 국가의 J공사(公社)와 그 퇴직자 간, 지방의 M공사(公社)와 그 퇴직자 간에 각각 발생한 분쟁이었다. 각자 원·피고나 시차도 다른 별건이었으나 그 관련 규정은 동일했다.　필자 소속부서로서는 그 두 건에 직접 당사자는 아니나 당해 법규와 제도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그 운용의 향방에 직결되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각 소송에서 원고인 공사 퇴직자들의 승소가 이어졌다. 피고 J공사는 1심에서 져 고등법원에 항소했고, 피고 M공사는 항소심에서도 패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사실 그 조항 신설 당시에 적용대상으로 고려된 공사(公社)들은 초대형 국가공사로서 따로 있었다. 그러나 법 문항 어디에도 그들만 대상이고 J공사·M공사 등은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은 여지조차 없었다.　각 피고 공사 측은 온갖 입법 자료까지 동원해 주장했으나 1,2심들의 판시(判示)는 설사 입법 시의 규율대상이 한정적이더라도 법은 그 보편적 속성상 동일·유사 사건에 대비하여 제정되는 것이라는 취지로 피고 패소를 선고한 것이다.  　두 공사들은 공식적으로 포기할 수가 없었을 뿐이지 실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후속 소송이 이어질 경우 발생될 천 억 이상의 재정부담 추계에 크게 낙심을 하고 있었다. 　상고한 M공사 측은 소송대리인을 법무장관 출신 L변호사로 바꿨다. 당시로서 거물(?)이던 L씨는 개요를 파악하고는 수임을 거절했다. 패소할 것이 뻔한데 왜 맡느냐고 화를 냈다. 공사 측이 맡아만 달라고 통사정해서 겨우 의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M공사 담당자가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L변호사에게 최종 보내 볼 사소한 자료나 추가 논리라도 있으면 달라고 했다. 사건 초기에 원로 법조인 면담 후 정리한 메모쪽지가 생각났다. 필기로 된 두 쪽 내용이었다. 　대충 갈겨 쓴데다 내용도 신통치 않아 예의에 안 맞아 보이지만 제출은 해 보라고 팩스로 보냈다. 이튿날 오전에 다시 전화가 왔다. L변호사가 그 쪽지를 보고 "이런 논리가 있었느냐, 이 정도면 해 볼만 하다 "고 했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두어 달 후 대법원에서 피고 M공사 측이 승소했다. 또 후속 J공사도 고법에서 뒤집어 승소했다. 소식을 접하고 필자 부서원 모두 하이파이브를 했다.  　당시 추억은 거의 `충격에 가까운 학습`이 스미는 느낌이었다. 말 한마디 논리 한 조각이 이렇게 결정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소송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명마(名馬)인지 해마(害馬)인지는 그 주인만이 알듯 논리의 값 매김도 그 사용자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승부는 주로 마지막 1미터에서 결정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