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한반도에서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신라문명의 발상지이자 신라의 도읍지로, 세계사에 그 유래를 찾기가 쉽지 않은 천 년 왕국의 영화(榮華)가 지속되었던 고대 도시였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신라 이전부터 다수의 부족국가들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문화를 꽃 피워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경주만이 유일한 역사문화도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신라(新羅)는, 군사, 외교, 경제면 모두에서 강력한 고대 왕권국가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영원한 제국도 영원한 문명도 없듯이 신라 말기에 이르러, 소위 성골(聖骨), 진골(眞骨)이라 불리는 기득권들의 발호가 극에 다다르고, 권력다툼과 내란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사치와 향락에 빠진 신라의 귀족들과 임금은, 신라로 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한 후백제(後百濟)의`견훤`이 오늘날 포석정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 자락까지 쳐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주연(酒宴)에 빠져 있었다고 하니, 신라의 패망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든가 추측된다. 　신라 패망 후 경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천 년 영화의 흔적들은 고려조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희미해져, 행정구역상으로도 경주읍성이라 불리는 초라한 시골마을에 불과했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에 의해 신라왕경의 규모를 밝혀보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고, 그 후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취약한 정권의 정통성을 만들기 위해 신라 삼국통일 정신의 부활에 착안하게 되는데, 우선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우아하게 복원하라는 각하의 친필 지시가 그것이었다. 　그로 인해, 신라 패망 이후 천 여 년이 지나, 경주는 다시금 황금기를 맞게 되는데, 소위 `경주고도(古都)보존법`이 제정되고, 경주는 여러 가지 정부 특혜 속에서 개발이 가속되어, 타 도시민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관광 특수 지역으로 바뀌게 된다. 전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신혼 여행지, 수학여행지 그리고 단체 관광지가 된 것이다. 아직 당시에 전국적으로 농업 외에 특별한 산업이 없던 시절, 경주는 관광산업 하나만으로도 타 도시에 비해 부유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경주인들의 자존감이 크게 높아지면서, 배타적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함은 물론, 성은(聖恩)을 입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뭉쳐진 강한 보수적 기질이 형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기에 한반도의 변방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투철한 충성심으로 대변되는 귀족 자제들의 호국 `화랑정신`과 개방주의로 융성하였다면, 삼국통일 후의 평화와 번영이 사치와 나태함이라는 매너리즘을 만들게 되고, 기득권 귀족들의 타락과 보수적 성향이 결국 다시 신라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경주의 오늘을 견주어 보게 한다. 　경주고도보존법과 관광특구 지정에 따른 특혜와 여당 몰표의 충성심 그리고 경주인들의 문화 자긍심이 초기 경주 발전을 견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구(舊)정권에 대한 충성심과 경주인들의 보수성 그리고 낡은 경주고도보존법이 현재 경주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경주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을 가진 지방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되어, 현재 인구 불과 25만의 소규모 광역도시가 되어있다. 전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낮고 가장 고령화가 가속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머지않은 장래에 도시 소멸론 까지 대두되고 있는 백척간두에 선 지방도시라는 얘기다. 　박정희 정권의 경주 개발 정책 이후, 지난 수 십 년간 진행되어온 문화재 발굴 작업에 따라 지금은 대부분의 중요 문화재 발굴이 완성되어 박물관에 보관된 상태임에도, 여전히 사학계(史學界)는 이후 백 년 간 이라도 경주는 문화재 보호 내지 고고학 연구라는 미명(美名)의 볼모에서 헤어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닌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