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려보았습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던 시인 기형도(작고)처럼 우리는 빈방에 찬밥처럼 담겨 엄마를 기다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골목 밖을 바라보다가 청소도 하고 숙제도 할 수 있었지만 오지 않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 어깨를 넘어 온몸을 휘감아오면 우리는 빈방에 엎드려 울고 말았었지요.  　1991년 그 옛날(?), 이별 좀 했던 사람들은 가수와 제목은 몰라도 애절한 기다림을 노래했던 두 문장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널 마중 나가 있는 내 삶은 고달퍼`이며 다른 하나는 `왜 이리 늦었냐고 그대 내게 물어오면 세월의 장난으로 이제서야 왔다고`라는 `옛이야기`의 노랫말입니다.  　발라드 특유의 창법으로 웅변처럼 외치던 두 문장이 지금도 큰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세월의 장난으로 이제`야 왔다는 위로가 희망이 되기도 하는 나날이었습니다. 모두 `옛이야기`였지요. 눈물에 쌓인 그대는 `가시밭 내 맘을 밟`고 떠난 `서럽던 인연`이었지만 서로가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짓(진)물러진 서러움이 서로의 어깨에 춤추는 나날이 흘렀습니다. 그 사랑을 `옛이야기`라 부르며 내숭도 부리지만 지금도 `손수건만큼만 울고 반갑게 날 맞아`줄 그대를 기다립니다.　옛 얘기 하듯 말할까? 바람이나 들으렴. 거품 같은 사연들. 서럽던 인연 눈물에 너는 쌓인 채. 가시밭 내 맘 밟아. 내 너를 만난 그곳엔 선홍빛 기억뿐. 널 마중 나가 있는 내 삶은 고달퍼. 짓물러진 서러움 내 어깨에 춤추면, 갈 테야. 그 하늘가 나를 추억하는 그대. 손수건만큼만 울고 반갑게 날 맞아줘. 왜 이리 늦었냐고 그대 내게 물어오면, 세월의 장난으로 이제서야 왔다고…. -박주연 작사, 이동진 작곡 김규민 노래, `옛이야기`　`널 마중 나가 있는 내 삶`은 시적으로 삶을 함축하는 표현입니다. 한 사람의 삶이 종교 혹은 예술의 한 분야를 마중 나가 있다는 것은 그 `무엇에` 전생을 거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중 나가 있는 삶이 어디 고달픔뿐이겠습니까? 하지만 위의 노래 `옛이야기`는 절대적 사랑의 아픔을 그대에게 직접 전하지 않습니다.  　남의 이야기, 옛이야기 하듯 지나가는 바람에게 들려줍니다. `눈물에 쌓인 채 가시밭 내 맘 밟아`가는 그대도 나처럼 서럽겠지만 `가시밭 내 맘`은 그 무엇인가를 마중 나가 있는 자의 운명이며 업인 현재 상황의 줄임말입니다. 내 사랑을 바람에게 이야기 하는 수동적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결코 마중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널 마중 나가 있는 삶은 `늘` 그대를 마중 나가 있는 삶입니다.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 `세월의 장난으로 이제서야 왔다`는 외침은 그냥 그대로가 절창입니다. 이 노래의 가치를 급상승 시킨 작사와 작곡입니다.  　이 노래에는 위치를 알 수 없는 장소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 `그 하늘가`입니다.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기 힘든 `그 하늘가`에는 나를 추억하는 그대가 존재하지만 먼 하늘나라일 수 있다는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지만 나를 추억하는 그대에게 `손수건만큼만 울고 반갑게 날 맞아`달라는 안타까운 부탁을 합니다. 허허, 우리네 사랑이 바람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편안해지는 날이 언제 올 수는 있을까요? 　이 노래의 노랫말을 서른 즈음의 여성이 쓴 것이라고는 믿기는 어렵습니다. 사랑과 이별을 달관한 전문 이야기꾼의 옛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쉰이 넘은 박주연은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등을 쓴 스타 작사가로 늘 예술성 있는 작품에 `마중 나가 있는`현재 진행형 이야기꾼입니다. 서른 즈음에 사랑 같은 건`옛이야기`라며 `세월의 장난`으로`돌렸던 내공 깊은 사람, 작사가 박주연은 이야기합니다. 오래된 마중은 오래되어서 아름다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