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居)하는 공간이 권위(權威)의 원천이 될 수 있는가? 물체의 몸집은 그 자체로 작은 것보다 큰 것이 더 위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집이 크다고 사는 사람의 통도 큰 것은 아닐 것이다. 　중국의 자금성은 세계 최대 규모의 궁궐 유산이다. 각 국의 재외공관은 대체로 그 본국이 큰 나라이면 그것도 크다. 자카르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은 부지가 어마어마하고 러시아 대사관도 엄청 크다. 　재외공관이라고 하면 대사·공사·참사관 등 외교관들이 일하는 대사관, 총영사·영사 등 영사들이 근무하는 총영사관, 그 외 대표부·출장소가 있고, 이들 사무공간과 공관장이 거주하는 `관저`(官邸)까지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 중 특히 관저는 크기나 구조도 중요하다. 그것이 나라 국력과 관계가 있다고들 인식되고 있는 것은 주요 외교행위의 많은 부분이 여기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한국 대사관저는 정원에서 천 명 정도는 충분히 파티를 할 정도이다. 그와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일본 대사관저도 외양부터가 대단하다. 　재외 외교용 건물은 외교적 차원에서 외형적 효과를 고려해 어느 정도 규모 이상으로 구축될 필요성이 인정되고 실제로도 그렇게 추진되어 왔다. 　한편, 국내 고위직의 공적인 거주공간은 관저라는 말도 쓰나 주로 `공관`이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이 거주하는 청와대 관저, 국무총리 공관, 외교부장관 공관 등이 있다. 　지방에도 중앙 소속의 지방 기관장을 위한 `관사`(官舍) 또는 사택(舍宅)이 있다. 상당한 규모의 저택도 아직 있으나 대부분 공동주택 형태로 바뀌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간부들을 위한 관사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으나 단체장의 관사가 저택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은 소수이다. 　이 국내 공관의 경우는 재외공관과 달리 외모적 권위에 치중하면 허장성세(虛張聲勢)요 낭비가 된다. 설사 모양을 고려하더라도 크기 자체보다는 형상의 설계와 그 기능성이 더 중요해 보인다. 　`미국 힘`의 지휘부인 백악관(White House)은 연방 의회(Capitol Hill)나 대법원(Supreme Court)의 웅자에 비하면 그 외형은 4층 수준의 그냥 소박한 공공건물에 불과하다. 　이 백악관은 워싱턴이 미국의 정치·행정 수도가 된 1800년 제 2대 애담스(J. Adams) 때부터 대통령 공관이 되었다. 가운데 빌딩(main building)이 대통령 가족이 거주하는 중앙관저(Executive Residence)이고, 나중에 지어진 서관인 웨스트 윙(West Wing)에 대통령 집무실과 국무회의실(Cabinet Meeting Room), 비서실 간부 회의실·사무실 등이 있으며, 동관인 이스트 윙(East Wing)에는 영부인 집무실 등이 있다. 각 사무실 간 왕래가 몇 분 안에 다 가능하다. 　국무회의실 크기는 한국 그것의 절반도 안 된다. 장관급인 캐비넷 멤버들의 의자가 똑같이 따닥따닥 붙어 있고 가운데의 대통령 의자만 조금 크다. 그 의자들의 뒤 윗부분에 직위와 당시 점직자 이름이 씌어져 있어 퇴임할 때 본인이 원하면 가격을 지불하고 가져가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은 타원형이어서 `오벌 오피스`(Oval Office)라고 하며 크기가 20평 남짓 정도로 청와대 집무실 크기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 집무실 책상 이름은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이다. 　19세기 중반 영국과 미국이 크림전쟁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시절, 북극해에 실종되어 표류하던 영국 탐험선 `레졸루트`(Resolute)호를 미국이 구출해 영국에 보내주어 양국 간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후 빅토리아 여왕 때 그 배를 해체했고 그 때 나온 원목으로 책상을 제작해서 미국에 선물로 준 것이 바로 이 책상이다. 현재까지 돈독한 양국 관계의 상징이 되고 있다. 　세계를 이끈다는 백악관은 이처럼 아담한 모습이지만 구성원 간 소통에 매우 효율적이고 나름의 의미와 역사적 사연을 품고 자존감 있게 자리하고 있다. 　U광역시의 본 청사는 주변 건물들에 비해 큰 편이 아니지만 그 위용이 넘친다. 지방자치단체의 독립 관사도 중앙의 관선 단체장이 내려오던 시대의 유산이므로 이제는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스코틀랜드 하일랜드(Highland) 지역에 가면 산들이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집의 규모도 그 주인의 도량(度量)의 크기와는 상관이 없다. 큰 집에서 통이 커지는 것도 아니요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