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 축구팬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4년 만에 돌아온 축구축제를 즐기느라 바쁘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했더라면 재미와 열기는 더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별 리그 독일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월드컵의 이변을 연출했다. FIFA 랭킹 세계1위이자 이번 대회 우승 후보인 독일을 2대0으로 이겼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였다. 독일전의 통쾌한 승리는 축구팬을 비롯 국민들에게 준 이번 월드컵 대표팀의 큰 선물임에 틀림없다. 그런 탓인지 월드컵에 대한 축구팬들의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호주 등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사우디는 러시아와의 개막전서 무려 5골이나 내주고 패했다. 이란과 호주도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아시아 5개 국가 중 일본이 유일하게 16강에 나갔지만 벨기에와 경기에서 아쉽게 2대3으로 역전패, 8강진출은 무산됐다. 　일본은 폴란드, 세네갈, 콜롬비아가 함께 속한 H조에서 1승1무1패 승점4점을 얻어 조2위로 16강에 올랐다. 아시아국가중에선 조별리그 성적이 가장 좋았다. 　8강 진출을 놓고 지난 3일 새벽 치러진 일본-벨기에전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였다. FIFA 랭킹 세계3위 벨기에를 상대로 일본은 예상과 달리 전반전부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전반을 0대0으로 팽팽하게 마친 일본은 후반 들어 연속 2골을 넣으면서 8강 진출에 성공 하는 듯 했다. 그러나 마치 야구에서 9회말 역전 홈런이 터지듯 경기는 이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벨기에는 만회골에 이어 동점골, 결국 추가 시간에 역전골을 성공 시키면서 드라마 같은 짜릿한 승리를 맛봤다. 다 이긴 경기를 놓친 일본 선수들은 경기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생중계로 이 경기를 지켜보던 국내 축구팬들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생중계를 하던 해설자는 일본에 골을 내준 벨기에의 분발을 촉구했고 벨기에가 추격골을 잇따라 터뜨리자 마치 한국팀이 골을 넣은 듯 흥분했다. 　한국의 영원한 라이벌인 일본이 이기기를 공개적으로 응원할 수 없는 게 해설자 뿐만 아니라 많은 축구팬과 국민들의 공통된 감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대회에 보여준 일본의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FIFA 랭킹61위로 한국(FIFA 랭킹57)보다 4계단 낮은 일본은 경기마다 예상을 깨는 선전을 펼치며 세계축구팬들에게 일본 축구의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이제 아무도 일본 축구를 만만하게 보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비록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이번 월드컵대회과정에 일본 팬들과 축구선수들의 매너는 역시 일본은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시켜줬다. 팬들은 역전패에 화가나 주변의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갈 법도 하건만 쓰레기 봉투를 들고 응원단 주변을 깨끗이 청소했다. 전 세계 축구팬들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선수들마저 벨기에전에 억울하게 역전패 당했지만 사용하던 라커룸을 깨끗이 청소하고 떠났다. 라커룸 곳곳은 왁스로 닦아 놓은 듯 광이 번쩍번쩍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러시아어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도 빼놓지 않았다. 일본선수와 팬들의 이런 행동에 당연히 찬사가 쏟아졌다. 문득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에 역전패 당한 이탈리아 선수들이 보인 정 반대 행동이 떠오른다. 경기에 패한 이들은 당시 자신들의 숙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 비난이 쇄도했었다.　일본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 대회에서 경기장 안에서 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승자가 됐다. 과거사 사죄에 인색한 일본이 밉지만 스포츠에서만은 배워야할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