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신분 상승의 사다리 중에, `사법고시`만한 것이 없었다. 아무리 흙수저라도 사법고시만 패스하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숭이 청년도 갑자기 영감님 칭호를 받을 정도로 모두가 부러워하고 두려워 하는 지위를 한 순간에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서울 고시촌에 가면 전공 불문, 수많은 청년들이 일약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꿈을 품고 사법고시 공부에 매달려 청춘을 불사르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던 게 아닌가. 어디 고시촌뿐이겠는가?  　세상을 등지고 오직 득도를 위한 수행자의 구법 (求法)도량인 깊은 산속 절이나 암자에도, 참선(參禪) 해탈(解脫)과는 전혀 무관한 고시 준비생들이 뻔한 소리들로 가득 채워진 `육법전서(六法全書)`를 손에 들고 피골이 상접하도록 용맹정진을 계속하고 있었으니, 가히 신분 획득을 위한 그 집념은 보리수 아래에서 홀로 사색하여 대오(大悟)를 이룬 부처님의 공부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물론 머리가 뛰어나(?) 단 번에 소년이 영감님이 된 경우도 있었지만, 3수 4수 정도는 기본이고, 중년을 지나 장년이 되도록 벼락출세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아까운 인생을 낭비해버린 사람들도 아마 한 둘은 아니었을 것이다. 즉, 육법전서를 통째로 다 암기하여 1차 시험은 합격했는데, 꼭 2차 시험에서 낙방한다. 　1차 시험만 합격해도 이미 절반은 판사나 검사가 된 기분인데, 늘 그 마(魔)의 2차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니, 거듭될수록 이미 투자한 노력이 억울하여 그 벼락출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증상을 이름하여 `고시병`이라 하는데, 이것 역시 사실상 심각한 정신질환이 아닌지 모르겠다. 　지방선거가 끝이 났다. 선거가 끝나면, 당연히 유세도 끝나야 하겠지만, 언제 부터인가 선거가 끝난 뒤에도 무개차(無蓋車)에 올라 손을 흔들며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당선(當選) 인사를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낙선(落選) 인사를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인지 아니면 외국에서도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낙선 인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마음이 짠하여 보는 이의 마음도 그리 편치는 않다. 　그리고 보통 낙선 인사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이 정치 재수생, 삼수생이 되는 경우가 많고, 드디어는 돌이키기 어려운 권력집착 정치병증(政治病症)으로 이행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 또한 심각한 사회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승자독식(勝者獨食) 게임에서 사실 90 퍼센트의 득표율 차이나 단지 1 퍼센트의 득표율 차이가 전혀 다르지 않지만, 석패(惜敗)한 후보들의 입장에서는 늘 그 유의미한 득표율이 문제의 발단으로,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아상집착(我相執着)을 만들게 되는 원인이 아닌가 한다. 모든 집착이 다 인간 고뇌의 근본 원인이지만, 신분이나 권력에 대한 집착은 그 중독성이 훨씬 강력하여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헤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음으로,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 그런데 아무리 내가 사랑하여도 상대방이 나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으면 그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없고, 결국 스토커(stalker)가 되거나 증오(憎惡)로 바뀌어 불행한 결말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미련을 버리고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할 줄 알기만 하면, 더 좋은 사랑이 나를 찾아 올 확률이 훨씬 높다는 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당선자든 낙선자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음으로 누가 더 행복할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를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