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가 보수 야권에 남긴 후유증이 만만찮아 보인다. 최대 야당이었던 특정 정당은 그리도 오래 울쿼먹었던 안보 비지니스도 포기하고 급기야 당 해체설이 나오는가하면 정당의 이념 바꾸기는 물론 그 진부한 당명 개정설이 다시 또 재기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보수 야당 하나는 무슨 뜻인지도 잘 이해가 안 되는 탈이념(脫理念) 정당설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참, 머리가 지지리도 안 돌아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안보란 국가 존립의 기본인데, 누가 국가 안보를 나무라는가? 안보란 당연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인데, 단지 그것을 빙자한 대국민(對國民) 비지니스를 국민들이 못마땅해 한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그리고 당의 이름을 바꾼 것이 엊그제 일인데, 또 무슨 당명을 들고 나오겠다는 것인지? 당의 이름을 백번 고쳐도 국민들은 아마 다른 당으로 보지는 않을 것 같아서 해본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야당에서 나온 말, 탈이념(脫理念) 정당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정신이 나가거나 혼이 빠진 사람도 있긴 있지만, 이념이 없는 정당은 어떤 정당이라는 말인지? 복부인들의 일수 계모임이 아닌 바에야 정체성이 없는 단체가 있을 수 없듯이,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정당의 존립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국민들의 바램은 그 무슨 정체성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라거나 이념 없는 정당 정치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타당한 논리에 근거한 확고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그런 합리적 정당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대의(代議)민주주의를 잘 못 이해한 사람들이 주민의 뜻을 대의(代議)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과 아집을 대의로 포장하려 했기 때문에, 이제 주민들은 그들이 실질적인 대의민주주의를 이행하게 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직접민주주의를 선택하려는 것이 아닐까? 　이 기회에 정치인들은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거처럼 한 편이 성(盛)하면 한 편이 쇠(衰)하고, 다시 성한 편이 쇠해지면 또 쇠한 편이 성해지는 권력의 순환이 아니라 지금은 근본적으로 권력이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기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따라서 낡은 정치, 낡은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기성 정치인들은 그들의 입지가 좁아 질 수밖에 없고, 또 새로운 정치에 적응이 쉽지도 않기 때문에, 여야(與野)를 불문하고 이제 정계(政界)의 세대교체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일당 싹쓸이 6·13 지방 선거 결과를 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때의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은 바람이 아니라 쓰나미였으며, 쓰나미는 지형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기존 삶의 방식까지 바꾸게 한다는 점에서 남아야 할 사람들과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이 더욱 명확해 진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깊은 명(明)과 암(暗)을 드리우고 비명(非命)에 생을 마감한 한 독재자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초헌법 (超憲法)기관인 그 무시무시한 친위(親衛)조직을 만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회의원이든 국민이든 말이야. 겁나는 데가 있어야 돼!" 그게 사실이라면, 소위 그 겁나던 기관에 의해 행해진 반인권적,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이제 그만 좀 들추는 게 어떤가라고 할는지는 모르지만, 다시는 그런 암울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설적으로 지나간 과거를 오히려 철저히 들추어, 죄와 벌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세상도 변했다. 세상에 알려진 사람, 알려지지 않은 사람, 그 숱한 사람들의 민주화 투쟁의 대가로 현재 우리가 이만한 삶과 자유라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국민들이 위정자(爲政者)들을 향해 거꾸로 말하고 있다. "국민 무서운 줄을 좀 알아야지"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