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생님, 선생님의 삶에 봄날은 언제였는지요? 혹시 봄날이 선생님을 거기 두고 훅 지나간 것은 아니겠지요? 지난 5월 초순, 중앙일보의 `시가 있는 아침`에 흘러간 노래 `봄날은 간다.`의 노랫말과 함께 연분홍 흩날리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이영광 시인은 `깨는 듯 조는 듯 봄날은 간다. 꿈인 듯 생시인 듯 봄날은 간다.`는 해설로 우리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봄날이 간다구요? 그렇습니다. 봄날은 갑니다, 꿈인 듯…. 이 선생님께서 `봄날은 간다`를 구성지게 부르던 그 날도 꿈같은 봄이었지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　　이 노래는 전쟁 직후,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듯 고달픈 우리네 봄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에 따르면 가수 백설희의 데뷔곡으로 원래 3절 가사로 만들어졌으나 녹음 시간이 맞지 않아 초판에는 1절과 3절만 수록되었고 2절은 재판 때부터 실려져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3절로 이루어진 절창의 시 한 편이 애절한 리듬과 짝을 이루어 듣는 이의 마음을 애틋하게 합니다. 　이 노래는 `-가 ∼에 ∼더라./오늘도 ∼며 ∼는 ∼길에/∼면 같이 -면 같이 ∼던 -에 봄날은 간다`라는 틀에 맞추어 두 문장으로 절묘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사랑의 봄 풍경-현재의 상황-추억의 장소-사랑의 회한`의 내용을 담은 3절의 노랫말이 같은 구조로 배열되어 있어서 과연 천재 작사가 손로원의 이름에 걸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선생님, 봄날에 문득 창밖의 새울음 소리를 듣고 따라 울었던 적이 있으신지요? 아름답던 `열아홉 시절`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생각해보셨는지요? 그 아련한 추억과 그림들이 황혼 속에 슬퍼지는 순간에 몸서리쳐 본 적 있으신지요? 우리에게 생각의 물꼬를 터주는 시구가 `봄날은 간다`의 3절에 애절하게 들어있습니다. 　백설공주 백설희(본명 김희숙)라는 가수는 6·25가 일어나기 전 `음악무용연구소` 악극단에 입단하여 노래와 무용을 익혔고 KPK라는 쇼단의 동화 `백설공주` 프로그램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었습니다. 6·25가 일어났을 무렵 작곡가 박시춘에게 받은 곡이니 어느덧 이 노래도 환갑을 지났습니다. 노랫말은 노랫말대로 곡은 곡대로 가수는 가수대로 아름다웠던 이 노래는 백설희의 위상과 함께 늘 최고를 달려왔습니다. 　KBS `가요무대`에서 `명가사 명가요`를 주제로 방송이 진행된 적이 있는데 가수 장사익이 `봄날은 간다` 를 멋지게 불러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으며`시인이 뽑은 좋은 가사 가요 100선`에 높은 순위로 소개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 선생님, 혹시 우리에게 `같이 울던`봄날이 있었는지요? 꽃이 지고, 별이 지고, 새가 울어 서럽던 우리의 청춘에는 어떤 봄날이 있었는지요? 　이 선생님! 아무리 발버둥쳐도 봄날은 간다지만…. `너, 1년에 공문 몇 건 처리했냐?`는 얄궂은 질문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장사익과 최백호가 부른 `봄날은 간다`를 들어보면서 `가다`동사 뒷면에 숨어있는 희망을 찾아 읽어야지요. 알뜰한 맹세로 떠난 사랑은 알뜰한 맹세로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