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북쪽 이탈리아의 중부 소도시 피틸리아노는 2300년 전부터 에투루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이 살았던 도시다. 이 도시는 절벽 위에 소담하게 `얹혀있다`고 표현해도 좋은 작은 시골마을이다. 이탈리아에는 이처럼 수많은 절경을 보유한 소도시들이 많아 여행자들은 탄성을 지른다. 아무튼, 피틸리아노는 신도시와 구도시로 나눠져 있다. 신도시는 그야말로 유럽의 여느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편의시설로 가득 차 있지만 구도시는 2000여년 전부터 조성된 전통과 문화가 있는 지역이다.　피틸리아노의 구도시는 16세기 이탈리아의 문화 부흥에 큰 기여를 했던 메디치 가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1500여년 전부터 살아왔던 유대인들의 삶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이 구도시는 개축이 불가능해 수백년된 건축물들이 중세 분위기를 그윽하게 자아낸다. 그리고 구도시에는 차량 출입이 불가능하다. 신도시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구도시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유럽 내의 몇 안 되는 슬로우푸드를 대표하는 도시다. 패스트푸드를 일절 거부하고 이탈리아 전통음식만 고집하는 피틸리아노는 그래서 여행자들의 기호를 총족시킨다.　이런 도시가 유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문화권의 대도시는 대부분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눠져 있다. 구시가지를 일컬어 메디나라고 부른다. 이슬람의 메디나는 피틸리아노와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전통적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좁은 골목길에 수백년 된 건축물은 기본이고 다닥다닥 붙은 상점들에서 그들만의 전통문화가 가득하게 거래된다.　대표적인 도시로 이란의 야즈드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한다. 이슬람 문화가 페르시아제국을 침입하기 전 조로아스트교가 국교였던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문화가 식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황토색 골목길은 미로처럼 이어져 있고 아침 저녁 고요한 골목길을 걷다가 보면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한 도시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곳은 지나치게 상점이 많이 들어섰거나 숙소가 빼곡하게 자리하는 것도 아니다. 서민들이 자리잡고 살아가는 그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 여행자들이 가장 신선한 충격을 받는 여행지로 손을 꼽는다.　경주의 구시가지를 돌아보자. 전형적인 한옥이 각양각색의 모습을 띠고 모여 있는 황남동 한옥마을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모양을 바꾸고 있다. 어느 순간 도로와 접한 가옥이 수리를 하는가 싶다가 그 집은 카페로 변하고 더러는 한옥 펜션으로 바뀐다.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무절제하게 상점이 들어서다 보면 전통의 본연이 사라져 버릴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물론 사유재산을 개인이 활용하는 것을 두고 규제할 방법은 없지만 이대로 둔다면 중국의 어느 고진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한 마을의 90% 이상이 식당과 숙소로 변한 중국의 고진들은 여행자들이 잠시 호기심에 들렀다가 다시는 찾지 않는다.　그리고 경주의 구시가지에는 수시로 그 좁은 골목길까지 차량이 들락거려 여행자들이 불편을 호소한다. 걸어서 호젓하게 경주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도 수시로 차량의 경적이 훼방을 놓는다. 주민들과 여행자들은 제발 차량을 통제해 달라고 호소를 하지만 당국은 귀를 막고 있다. 이러다가 경주를 찾는 여행자들이 영원히 발길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든다.　잠시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들의 평균적 제도를 벤치마킹해 경주형 정책을 마련한다면 금방 해결될 일이다. 인근 국가인 일본의 교토를 가보기만 해도 경주가 어떤 방식으로 관광산업을 일으켜야 하는지에 대한 길이 보인다. 기욘거리 하나만 제대로 들여다 본다면 경주의 구시가지를 어떻게 꾸며야 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그걸 못하는가.　경주는 늘 신라 천년의 역사유적이 목을 달고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유적들을 복원한답시고 수십년의 세월을 허비하고 있다. 고증에서 벗어나면 호미도 가져다 대지 못하게 하는 문화재법도 문제지만, 복원이냐 재현이냐에 대한 빠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당국의 늑장도 문제다. 이러다가 하세월이다. 결국 세계의 앞선 관광도시는 끊임없이 변신하고 있는데 경주는 뒷북만 치다가 끝날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비어 있는 지갑만 들여다보면서 대책을 찾지 못한다. 이 일을 누가 해 줄 것인가. 시민과 행정이 주체다.주체는 자기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늘 헛다리만 짚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