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재학 시에 증조고 산소에 할아버지 따라 성묘(省墓) 갔다가 상석에 새겨진 학계대표 한진준, 최현천, 김철주 세 분의 휘자(諱字)를 보고, 왜 다른 집 어른을 증조고 상석에 이름을 새겨 넣었으며, 학계(學稧)란 무슨 뜻인가 하고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여쭈어 보니 학계란 말은 제자들이 글을 가르쳐준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고자 모은 모꼬지라는 것이며, 이 세분은 그들 중에 대표가 되는 분으로 매년 정기 모임과 임시 모임을 가지면서 서창에 모여 동문수학했던 그 정의를 다지며 학문적인 토론과 강론을 하며 스승을 받들어 사모하였다는 것이다. 산촌에서 조그마한 한옥에 ‘어련서당’이란 간판을 걸어 놓고 일제 치하에 말살되어 가는 민족문화를 전승보전하기 위해 후학을 교육하였던 증조고께서는 비록 하세하셨지만 그래도 제자들이 선생을 잊지 않고 계를 모아 가르침에 보답하고자 노력 하였다는 것은 진보(珍寶)와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존귀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성묘 갔을 때는 세 제자분의 휘자를 바라보며 고개 숙여 존경의 예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이 비록 각박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재학 시에 감명을 주었던 선생을 잊지 않고, 그 은혜를 생각하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은 퍽 다행하고 행복감을 주고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유치원 다닐 때 지도해 주신 담임선생님을 기억할 수 있느냐 물으면 모두가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못된 놈이라고 꾸짖고 싶지만 그것은 성장발달단계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지 작심적 망각은 아닌 것이기에 꾸중의 대상은 아니라 할 것이다. 매년 맞이하는 스승의 날에는 먼 거리에 살고 있는 제자들이 문자메시지로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문장을 보내 주고 있어서 행복감에 젖곤 했는데, 금년에는 더욱 특별한 기쁨과 행복감을 느껴볼 수 있어서 지금도 그 고마움을 소중히 간직해 보려고 한다. 지난 14일 오후였다. 퇴근을 하려고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노크를 하기에 개문(開門)하였더니, “이사장님! 아니세요. 유치원 졸업생 김미진입니다. 아직 정정하시네요....” 5세아 김미진이가 27세의 아름다운 미모의 처녀가 되어 스승의 날에 못 온다고 미리 찾아뵙는 다는 것이다. 졸업한 후 세월이 23년이 흘러가는 동안 공부하고 취업해서 미스코리아가 되어 찾아 주었기에 어찌 기쁘고 행복하지 않을 것인가. 회사원이 되어서 경리직을 맡아 열심히 근무하면서 알뜰히 저축을 한다는 것이다. 엘범을 꺼내 장을 펼쳐가며 유치원 시절의 모습을 찾아 비교해 보니 세월은 흘렀으나 아름다움은 그 빛을 더해주고 있어서 고마웠다. 당시는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어렵게 살았던 것으로 기억되었는데, 지금은 세 자매 모두가 착실하게 성장발달해서 유족한 생활을 영위한다고 고생담을 의미 깊게 전해 주었다. 붉은 꽃 한 송이를 가슴에 달아 주었지만 그 꽃에 묻어있는 진한 사은의 미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 선생은 없다할지라도 참된 제자가 있기에 경주의 하늘은 영원이 빛날 것 같다. 미진아 고맙다.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