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든 고을이든 그 다스림이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 또는 이념은 `민주적 가치` 즉 `민주성`(民主性)이다. 이 민주성은 국가나 지방 행정이 종국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국민 또는 주민 전체의 행복에 있다는 것이고, 효율성또는생산성이니 법치주의니 하는 것들은 모두 그 하위 수단적 이념들이다. 　이 행정 이념들을 달성하고 신장하도록 하기 위한 공식적인 장치가 바로 각종 `제도`(制度)이며, 이 제도는 사회 분야별로 도출된 약속이나 합의를 항구적인 규범의 형태로 제정한 것이다. 　한편 `정책`(policy)이란 공적문제의 해결이나 공공목표의 달성을 위해 정부에 의해 결정된 행동방침으로, 이에 따라 어떤 `제도`가 생기기도 하고 변경 또는 폐지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책`(policy measure)이란 것도 이와 유사하나 보다 집행적 차원의 개념이며 실무에서는 중앙의 정책에 대하여 지방의 시책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개별적인 `사업`(program), `과제`(project) 등이 있다. 　이 공공 영역의 기본 개념들 간에 그 적용대상 범위나 집행의 직접성 정도에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어떤 제도를 형성·변경하는 정책에서부터 개별 과제에 이르기까지 그 기획에 있어 이해관계의 `다면성`을 `철저히 고려해야 하는 점`은 같다. 이는 그 최고 지도 정신이 어디까지나 국민 또는 주민 전체의 행복 즉 `민주성`이기 때문이다. 　굳이 헌법론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나라의 권력구조는 힘(power)들 간에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 유지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기본이다. 힘의 `견제·균형`은 `민주성` 이념을 지켜주는 주요 버팀목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앙정부의 행정부(the Executive Branch)와 입법부(the Legislative Branch) 간 또는 중앙 행정기관 상호간이나 지방 자치단체의 집행부와 지방의회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견제·균형`은 각종 제도를 만들거나 조직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하나의 원리가 된다. 이 원리가 깨어질 경우 생태계에 먹이사슬이 파괴되어 부작용이 생기는 것과 유사한 문제가 생긴다. 무엇보다 어느 일방의 독주는 필연적으로 남용과 부패를 낳고 이로써 `민주적 가치`가 훼손되기 마련인 것이다. 　공·사 영역 할 것 없이 인력이나 예산 등 자원을 관리하는 부서는 대개 보수적이고 인색하여 수요자로부터 좋은 평을 잘 듣지 못한다. 예전에 중앙정부의 구 총무처는 나라의 조직과 인적자원을 배분·관리하던 기관이었다. 여기에 대통령 직할 기구인 ㅇㅇㅇ 출신의 H씨가 장관으로 부임해 왔다. 그 기구는 권력기관이지만 조직 및 인력 배분 등과 관련해서는 당시 총무처에 아쉬운 때가 있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종전 소속에서 총무처에 대해 가졌던 시각과 정서에 따라 일을 했다. 예로서 ㅇㅇㅇ의 조직·정원 배분을 독립시켰다. 종전 조직의 기관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보였던 제도의 하나를 없애 버린 것이다. 그 이후부터 그 기구의 조직이 점차 비대해지고 부분적이긴 했지만 일종의 힘의 견제·균형도 깨어지게 되었다. 　모든 제도나 정책 등은 처한 위치나 입장에 따라 이해가 다를 수 있고 각자 일리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한 편의 시각이 이유 있으면 다른 한 편의 관점도 이치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이 되는 것`은 범부의 상식에 속한다. 한 편의 입장에만 서서 법규 제도를 바꿔버림으로써 견제·균형이라는 원리적 가치를 훼손한 그 H씨를 장관 아니라 공인으로도 평가해주는 사람은 당시 정부 내에 별로 없었고 지금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정책이든 시책이든 개별 사업이든 전체 구성원의 다면적 이해를 고려하는 민주성 이념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신속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담을 짜는 자는 게을러야 한다`는 말이 있다. 흙담은 한 켜씩 굳혀 가며 시간을 두고 짜 올려야 견고해진다는 것이다. 급히 짠 담은 쉽게 무너져 내리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민주적 가치`는 속도를 내어 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행정에 작용하는 여러 변수들이 상호 견제·균형을 이루며 나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이미 성취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