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다리가 휘어졌다. 이제 겨우 47세인데 벌써! 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다리를 유심히 살펴봤다. 언제부터인지 발목 위가 휘어지더니, 이제 무릎 사이가 붙지 않는다. 그뿐인가! 허벅지 사이 가랑이가 벌어진 틈새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오월에 들어선 날씨에도 바람이 유난한 올해는 더욱 그곳이 스산했다. 그녀는 전신 거울을 등지고 서서 작은 손거울로 요리조리 뒷모습을 비춰봤다. 　어머나!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무릎뼈와 엉치뼈가 툭 튀어나와 볼썽사나웠다. 그때, 여고 동창 계모임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이 울렸다. 그녀는 잠깐만, 하고 알람을 끈 후 인터넷을 검색했다. 다리 사이가 3㎝ 이상 벌어지거나 무릎뼈가 안쪽으로 향해 있다면 O형 휜 다리, 무릎은 붙는 데 발을 모을 수 없다면 ×형 휜 다리이다. 유전인가? 비교적 일찍 세상 떠난 어머니도 그랬다. 하지만 어머니는 당시 70세였으니 23년이나 빨리 찾아온 증상이었다. 그녀는 잠시 어머니를 생각하고는 엄마, 하고 조그만 소리로 불렀다. 생전의 어머니가 슬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녀는 옛날을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에서 이제는 풀려나고 싶었다. 가슴속에 꼭꼭 눌러 놓았던 슬픔이 칼로 변해 온몸을 찔러 피를 내고, 마음이 밀랍처럼 녹아내렸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우울해지려고 했다. 그녀는 어머니를 의식에서 몰아내려고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는 다시 거울 속의 자신에게로 생각을 집중했다. 　몰랐다.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입고 있던, 착 달라붙은 레깅스 바지를 벗었다. 서둘러 옷장을 뒤졌지만, O형 휜 다리와 튀어나온 엉치뼈를 가려줄 옷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긴 원피스만 구석에 걸려있었다. 딸 옷 입었다고 욕하겠다며 어머니가 완강히 거부했던, 턱없이 럭셔리한 검정 원피스였다. 그녀 취향으로 강매시켰던, 그러나 77 사이즈여서 유품으로 간직한 그 옷을 입었다. 조금 할랑하지만, 그런대로 봐 줄 만했다. 　모임에서 오래간만에 근사한 식사를 마쳤다. 때는 오월, 곧 어버이날이 다가올 즈음이어서 부모님에 대한 화제가 꽃을 피웠다. 어버이날에 간다느니, 못 간다느니, 선물보다 현금이 좋다느니. 그때, S의 탄식이 쏟아졌다. "우리 엄마가 병이 나서 큰일 났어" "네가 엄마를 너무 부려먹어 병난 거야" 하고 다른 친구가 꼭 찔러 말했다. "요즘 딸 가진 엄마는 싱크대 앞에서 죽는대" 하자, 그 말에 자유로운 사람 있느냐며 또 다른 친구가 대꾸했다. 그녀는 자신이야말로 어머니를 과로로 쓰러지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맞벌이라고 해서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어린 시절처럼 공주 대접받고 살았던 그녀였다. 얼마나 무섭도록 깔끔 떠는 딸이었던가. 　새 아파트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나서였다. 그녀는 언니가 전해주는 말을 떠올렸다. 엄마가 김치를 만들다가 고춧물을 바닥에 흘려서 아무리 지워도 안 지워지더래. 큰일 났다, 애 보면 난리 난다, 하며 수세미로 빡빡 문지르다가 긁혀버려서 아버지랑 엄마가 주저앉아 엉엉 울었단다. 그리고 애, 너한테 사위 모르는 용돈 한 번 받아 본 적 없다더라. 이성적인 언니는 그저 객관적인 전달자로서 그녀를 추궁하지도 은근히 나무라지도 않았다. 귀가한 네가 긁힌 바닥의 흔적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고 엄마가 그렇게 웃으면서 좋아하셨단다. 언니도 마지막 말을 하며 웃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직장 다니는 딸자식에게 걱정 끼친다며 밤새 앓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엉금엉금 기어 나와 아침 식사를 지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반찬을 젓가락으로 끼적거리며 밥을 먹었다. 아버지에게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벌컥 화를 냈다. 그리고 요즘 말 그대로 그녀의 어머니는 싱크대 앞에서 쓰러졌다. 쓰러진 그 날까지 어머니를 여행은커녕 근사한 식당에 한 번 모셔가지도 않았고, 최소한의 가사도 돕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남편과 자식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와의 행복한 추억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녀의 휘어진 허벅지 가랑이 틈새로 불어 드는 스산한 바람처럼 철없던 생의 한 시절이 빠져나갔다. "그래도 너희는 좋겠다. 아직 살아계시니 기회가 있잖아" 울컥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느라 그녀의 얼굴은 화난 듯했다. 그렁그렁한 눈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친구들에게 그녀가 말했다. 다윗이 아앨랫샤할(새벽의 사슴이라는 뜻으로 경쾌하고 뚜렷한 곡조를 이름)에 맞춰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단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가로되(구약 시편 22장 6, 7)　"엄마가 보고 싶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녀는 가슴 언저리 옷섶을 비틀어 쥐었다. 갈라진 목소리가 겨우 삐져나왔다. "엄마… 용서해줘요…." 동그란 물방울이 탁자 위에 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