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적으로, `기획`이 어떤 목표의 달성을 위한 최적 대안을 탐색하는 미래지향적 과정이라면 이는 상당히 지적(知的)인 활동이라 할 것인가? 반면에 `서무`(庶務)는 말 그대로 잡다한 업무 과정이라면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비지적인 활동이라 할 것인가?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기획`이란 그야말로 `철저히 신경 쓰는 것`이다. 그리고 `서무`는 단지 수동적인 지원 역할만이 아니라 이 또한 미리 검토하고 조직 살림을 고민하는 즉 `철저히 신경 쓰는 것`이다. 따라서 기획과 서무는 서로 차원이 다른 것 같으면서도 동질적인 속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조직에서의 `기획`은 각 부서의 일을 총괄해 끌고 가는 것이며, `서무`는 각 부서 소관에 속하지 않는 일들을 총괄해 담당하므로 총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획`과 `서무` 양자 공히 끊임없이 살펴야 하는 종합적인 기능인 것이다. 이 점에서도 상호 본질적인 유사점이 있다. 　국회 고위직의 비서실장(1급상당 수석비서관)으로 잠시 재직한 적이 있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점심시간에 강변의 식당에서 비서실 직원 전체가 같이 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바람 부는 것을 보았고 바람 이야기를 했다. 그 고위직은 식사 후 바로 국내선 비행기로 지방에 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 근처에 가서야 바람 때문에 비행기 결항이라는 통보를 받고 차를 돌려 기차역으로 향한다는 전갈이 왔다. 점심 식당에서 심상찮은 바람을 보았으면 당연히 공항을 향해 출발하기 전에 결항 여부를 확인해 봤어야 하나 아무도 챙기지 못했다. 그날 어찌된 일인지 아주 기본적인 `서무` 행위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바람을 보고도 바람을 생각하지 못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봄날의 바람에 대한 몰각(沒覺)을 잊을 수가 없으며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기획이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서무`도 쉬운 것 같지만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서무라고 하는 임무를 우습게보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들 기능은 기본적으로 무서운 것이다. 이들은 언제나 `철저히 그리고 끊임없이 신경을 쓰는 것`이다. 　「하이테크 시대의 로테크」(허원순, 2012)라는 책에서는 미국의 911 테러를 `하이테크(hightech)의 아성이 로테크(lowtech)에 의해 박살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유비쿼터스가 판치는 오늘날 고도의 하이테크 시대에 테러범은 로테크에 해당하는 단검 한 자루만 가지고 조종실로 침투해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책 저자는 잘 다져진 로테크를 사회의 `기본기`로 간주했다. 　이 로테크처럼 `서무`는 조직에서의 `기본 기능`인 것이다. 훈련된 로테크의 위력처럼 기본이 잘 된 조직이 강한 것이다. 조직의 기본인 `서무`는 일면 우직하게 특별한 기법도 없이 `철저히 신경 쓰는 것`이라 할 것이다. 　서무 또는 총무는 조직 운용에 있어 마치 인체의 기혈(氣血)이 통과하는 경혈(經穴)과 같은 기능이요, 인체 내 조직들 사이에 두루 존재하면서 면역 항체를 전달해 주는 림프(lymph)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서무·총무는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항상 먼저 가 있고 또 마지막 설거지를 담당한다. 전쟁에서 보병(步兵)과 같은 역할을 한다. 보병이 최종 정리해 주어야만 전투가 끝이 나는 것이다.　한편 `기획은 젊은 엘리트들이 하고 서무는 나이 든 꼰대들이 하는 것이다?` 맞는 인식인가? 만약 그러하다면 필시 잘못된 인사기준이 되고 말 것이다. 기획이 아이디어 많고 종합적이어야 하는 대신 `서무`는 빈틈이 없고 입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양자 공히 그 본질은 `철저히 신경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무 담당자의 자질은 먼저 `철저성`이다. 이는 매사에 주도면밀해야 한다는 것이다.다음으로 `헌신성`이다. 이는 언제나 솔선하고자기희생적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공익성`이다. 이는 사안 판단의 이념적 기준으로서 항상 공과 사를 분명히 하여 공적인 잣대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조직에 기획도 필요하고 서무도 소중하다. 기획이 없으면 하루를 나아가지 못하고 서무가 없으면 하루를 먹지 못한다. 바람을 보고도 바람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서무라고 할 수 없다. `서무`가 살아야 조직이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