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올드보이`.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낳은 또 하나의 기현상이다. 여당과 야당, 두 정치극단이 겪는 배우 인력난이 원인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배우의 수급불균형이 빚은 결과란 얘기다. 어디는 너무 나서서 문제고 또 어디는 없어서 문제다. 작금의 대한민국정치에 `문재인 대통령` 한 사람밖에 보이질 않으니 어쩌겠는가. 선거공연의 세 요소는 지역과 유권자, 그리고 후보다. 공연날짜가 다가올수록 속 타는 건 야당이다. 하긴 해야겠는데 달리 방도가 없으니 전성기가 한참 지난 후보들을 내세울 수밖에. 불러주니 다행이고 와주니 고마운데 뒷일이야 어찌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누이 좋고 매부 좋으면 그만이다.　이런 난망한 장면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한쪽에선 때를 만난 듯 비꼬기에 바쁘고, 한쪽에선 궁색한 변명과 말 포장에 여념이 없다. 낡은 인물로 `땜질공천` 하느냐고 닦아세우니 750만 노인을 모독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인식의 한계다. 또 남의 일인 양 과거 행적들을 적나라하게 들추니 경륜을 내세워 반박하다가 급기야 스스로 `올드보이`라고 말한다. 호단긍장(護短矜長)이다. 서로 헐뜯고 못난 정치의 밑바닥을 들추어봐야 득 될 게 하나도 없다. 돌려막기도 문제지만 사람만 풍년인 것도 문제 아닌가 말이다. 필자가 보기엔 도긴개긴이다.　자기네들끼리 말싸움하는 건 좋다. 일상이 돼버렸으니 특별할 것도 없다. 그렇게 이 땅의 정치는 민심으로부터 멀어져만 갈 뿐. 그들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나보다. 관객을 무시하지 않고서야 역겨운 상황을 연출할 리 없으니 하는 말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정치판이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 어느 정당이나 후보를 내세우는 건 당당하게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함이다. 말로만 국민 눈높이를 외치지 말고 진정 국민이 원하는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 자격 없는 `올드보이`를 일방적으로 불러 놓고 인기투표를 강요하는 건 정치도의가 아니다. 그럴 시간과 노력을 보석 같은 후보를 찾는 데 써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다. 그게 인재영입이요, 정치를 살리고 국민을 살리는 길이다.　필자는 이런 `올드보이`를 `오·대·수`라 부른다. 영화 속 오대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우선, 어부지리를 노리는 사람이다. 서로의 부끄러운 민낯을 방패삼아 틈새를 찾는 건 너무 야비하다. 상대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인데 누워 뱉은 침이 어디로 가겠는가. 정말 국민을 두려워한다면 소환해도 귀환하지 말아야 한다. 또 권력에 기생하려는 사람이다. 집권여당이든 주류계파든 알 바는 아니지만 그게 만사형통은 아니다. 정권의 힘과 나랏돈, 권력자와 찍은 사진을 앞세우는 건 스스로 후보자격이 없음을 시인하는 것밖에 안 된다. 국민은 안다. 그런 것들이 민의를 대변하고 행복한 삶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선거출마가 직업인 사람이다. 　7전8기의 정신은 좋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생각과 이념이 다른 척박함`을 핑계 삼고, `유권자의 동정심`만 바랄 텐가. 뭐든 지나치면 해롭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자신도 살고 모두가 산다. 하니 `되느냐 마느냐`에 옭매지 말고, 할 만큼 했으면 물러나는 미덕도 보여줄 줄 알아야 한다. 거기에 국민은 찬사를 보낼 테니 말이다.　2200여 년을 존속했던 로마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 암살과 권력다툼의 위기에서 로마를 구한 황제다.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4두 체제를 구축하고, 대대적인 개혁으로 제국의 통합기반을 다졌다. 이후 서로마 황제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퇴위한 그는 여생을 달마티아의 살로네에서 보냈다. 막시미아누스는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고 귀환했지만 끝은 비참했다. 하지만 소환요청을 받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한 마디를 남긴다. `당신들이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는 행복을 안다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나 쉽게 말한다. 세상이 어지러울 땐 늙은 말의 지혜와 경륜이 필요하다고. 그러면서도 어떤 지혜이고 어떤 경륜인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것이 `올드보이`들의 것이라면 필자는 거부하고 싶다. 자신들을 위한 것이지, 결코 지역과 나라, 유권자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탓이다. 　올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이미 지나간 선거들에서 국민으로부터 후보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평가받고 심판받은 인물이라는 게 문제다. 국민은 올드한 후보도 후보지만, 올드한 선거, 올드한 정치를 더 염려하고 있다. 오늘날 권력정치에 빠져버린 사람들이야 알 바는 아닐 테지만, 보는 이만 애를 태울 뿐이다. 왜 매번 못난 정치의 책임을 국민이 져야하는지 그저 가슴만 답답해져 온다.　`올드보이`가 판치는 정치현장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같은 인물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뒷모습이 아름다운 정치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혹여 오늘밤 꿈속에서 그런 이를 만날지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괜한 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