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에 모든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가장 기초적인 덕목은 `겸손`(謙遜)이다. `겸손`과 `비굴`(卑屈)은 비슷해 보이나 본질은 다르다. 전자는 자신에 대한 `엄한 평가`를 바탕으로 하나 후자는 자신에 대한 `과한 평가`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겸손은 일관성이 있으나 비굴은 약자에 강하다가 강자에는 엎드리는 것이다. 또 `겸손`은 칭찬에 어려움이 없으나 `비굴`은 아첨의 방법이 될 뿐이다.　배움에 있어 위·아래뿐만 아니라 어린 사람으로부터도 배울 것이 있으니 묻는데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중학생 시절 자취방 주인 할아버지로부터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을 배운 기억이 난다. 겸손도 배움처럼 상사·동료에게만 아니라 부하에 대해서도 주요 관계 덕목이 되는 것이다.　조직생활에서는 이 겸손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겸손은 상하좌우간에 소통과 협업을 위한 출발이다. 왜냐하면 소통을 위해서는 일단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한데, 겸손은 상대를 높이되 자신을 낮춤으로써 비움의 공간이 넓어져 받아들이는 폭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기왕의 글에서 언급한 「조직인의 생활 5계」중 첫 번째 계율이 `목에 힘을 주지 말 것`이었다. 목에 힘을 주는 즉 거만한 직원은 스스로 가득 차서 `배움`이 없다. 그래서 성장하지 못하며 결국 인정을 받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실무자 중 `거만`이 몸에 밴 소위 `거물` 직원은 진정한 출세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거만하지만 직위가 높은 사람도 있다. 이들은 필시 타고난 이른바 금수저이거나 어릴 적부터 운 좋게 좌절의 쓴맛은 못 보고 엘리트 코스만 밟아 올라갔거나 또는 직위가 높아진 후 거만해진 경우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삼십여 년 중앙·지방에서 조직생활을 하는 동안 고위직 중 거만하면서도 부하들로부터 공명을 얻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상급자로서 거드름 피우는 그 순간의 쾌감은 있을지 모르나 조직원들에게 남겨주는 교훈적인 추억은 별로 없는 듯하다. 　공무원 초년생으로서 중앙정부 A부처에 근무할 때다. 당시 P장관은 이른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탁월한데다가 외국어도 잘 하고 체력도 뛰어났다. 그의 지휘자로서의 역량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받는 평판도 대단했다. 그럼에도 부처 내에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는 부하 직원은 없었다. 당시나 후일에조차 그를 실로 좋아하는 후배들도 거의 없어 보였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과시했다. 전체 직원들 앞에서도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으며 주말이면 간부들을 이끌고 등산을 하면서 체력을 뽐내곤 했다. 직급별 송년 회식을 할 때에는 따로 사회자도 두지 않고 본인이 직접 진행을 하며 나이 많은 간부들에게 반말하기도 예사였다. 　업무추진비(과거 판공비)도 매달 규정된 금액 범위의 다섯 배 정도는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당시 총무과장은 그 장관의 접대비용을 조달하는데 진땀을 뺐다. 당시는 워낙 높고 존경해야 할 상급자였으나 지금 회상하면 차라리 측은한 영상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언제나 `거만`(倨慢)은 `비례`(非禮)임이 분명하다.　반대로 지나치게 겸손하여 진심으로 따르는 하급자가 없는 상급자도 있었다. 과거 B부처 M장관은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났다. 전형적인 신사로서 일반 직원뿐만 아니라 학교 후배인 부하에게 사석에서도 존대를 했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공(公)과 사(私)를 구분했고 업무지시도 지극히 평온 공평하여 그야말로 무색무취요 무미건조한 리더십 스타일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정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에나 후일에도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거나 이른바 `닮고 싶은 선배`로 기억하는 직원은 거의 없는 듯했다. 겸손도 그 도가 지나치면 비굴에 가까워지는 것인가. 윗사람의 `과공`(過恭)도 `비례`(非禮)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 말 했듯이 `거만한 가슴에는 우정이 싹트지 않는다.` 갑의 위치에도 오래 머물면 거만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갑질`에 젖은 자는 영혼이 썩어버린다. 　그러나 언제나 매사에 겸손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자화자찬(自畵自讚)도 길어지면 거만으로 이어진다. 누구나 일순간 자만(自慢)에 빠지기도 하고 비굴해질 수도 있다. 그러하기에 `겸손`은 더욱더 조직생활에서 명심해야 할 제일의 계율이자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