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지루했던 겨울이 지나가고 계절은 어김없이 봄을 알려온다. 겨울 내내 앙상한 가지에서 찬바람을 일으키던 마당 한 곁의 매화가지에서 붉은 꽃망울이 수줍은 듯 부풀어, 금방이라도 화사한 봄꽃을 터뜨릴 기세이다. 뉘라서 오는 봄을 막아서고, 계절을 되돌릴 수 있는가?　영욕의 세월을 보낸 거목이 수명을 다하고, 그 위에 내린 된서리가 남은 명(命)을 재촉하고 있건만, 썩은 둥치에라도 봄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오늘도 고목아래 모여 제(祭)를 올리고 있다. 북치고 장고 치고 꽹과리를 치면서 알아듣지 못할 주문(呪文)을 열심히 외어보지만, 재미없는 굿마당에 구경꾼마저 떠나고 나면, 젯밥을 기다리던 갈까마귀 때만 춤을 추게 될 것이다.　인류가 낳은 위대한 과학자 `스티븐 호킹`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인류는 지구를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인류의 미래는 바로 저 먼 우주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정착할 새로운 별을 발견한다면, 인류가 지구에서 행한 실수를 거기서는 절대로 반복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환경을 너무 심하게 파괴하였다.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까지, 우리가 보수적 관념을 버리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개악(改惡)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 개선(改善)을 하자는 것이 아닌가?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는, 상상만이 아니라 실제로 지구를 떠나기 위한 준비들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천 년 전의 고대 도시 속에 갇혀있는 게 아닌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지구를 떠날 채비를 하듯이 우리는 이 편협한 도시를 떠날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 옛날 남태평양의 외딴 곳 `이스터섬…은 원래 산림이 무성하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조그마한 섬이었으나 나름대로 `모아이`라는 거석문화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살기 좋은 섬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한된 면적에 인구가 증가하고, 산림이 점점 파괴되면서 식량이 부족해지고, 드디어 부족끼리 편을 갈라 전쟁을 하면서 서로 잡아먹기(食人)싸움을 하다가, 섬 안에 갇힌 채 원주민들이 멸종되고 말았다는 슬프고도 끔찍한 연구 결과가 있다. 그들의 선조들은 거친 태평양을 항해하여 그 `이스트섬`에 정착하였겠지만, 그 후손들은 섬의 아늑한 삶에 길들여지며 항해술을 잊어버렸고, 드디어 자원이 고갈되어 서로 잡아먹게까지 되었지만 섬을 탈출할 용기나 지혜를 가지지 못한 채, 모두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얘기이다.　화려한 고대 문명이 일어날만한 천혜의 자연조건에, 많은 보물을 간직한 경주, 그러나 통일신라의 수도 경주는 그 풍성함과 안일(安逸)이 천 년 영화(榮華)의 막을 내리게 했고, 그 후 천 년이 지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역사문화도시 경주에만 안주(安住)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무엇이든 지키고 보존하여 변하기를 거부하며 내부에서만 편을 갈라 싸운다. 굳게 닫힌 성문은 열릴 기미가 없고, 사상(思想)마저 통제되는 성내문화(城內文化) 속에서 새로움이 싹틀 여지가 없어 보인다.　쿼바디스(Where are you going?), 모두가 굳게 잠긴 성문 안에서 경주를 살리자고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내가 보기엔 어디로 간다는 것인지?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고, 길을 제시하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마치 이스트섬에 갇힌 원주민들처럼, 바다를 건널 용기도, 현실을 개선할 지혜도 없이 서로 편을 갈라 비방하고 적개심만 불태우고 있는 모습이다.　오는 봄엔 유목(幼木)을 심자! 신(新)이 구(舊)를 대체하는 것이 섭리인 줄 안다면, 썩은 고목에 꽃을 피우려는 부질없는 싸움일랑 그만두고, 고목을 베어내어 그 자리에 유목이 자라도록 함이 옳지 않을는지?